올림픽대로 교통사고, 알고 보니 청원경찰의 치정 납치 범죄

중앙일보

입력

지난 12일 밤 10시경,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윤모(30ㆍ여)씨는 누군가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 끌려갔다. 윤씨를 잡아 끈건 한 때 연인관계였던 선모(30)씨였다. 선씨는 윤씨가 이별을 통보하자 그를 납치한 것이었다. 강원지역 모 시청의 청원경찰로 근무하는 선씨와 동갑내기 윤씨는 지난 6월 한 야구동호회에서 처음 만났다. 선씨는 윤씨에게 한눈에 반해 적극 구애했다. 인천에 사는 윤씨와 강원도에 사는 선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며 장거리 연애를 이어갔다. 하지만 두달넘게 이어진 사랑은 사소한 말다툼으로 금이 갔다. 선씨가 화가 나 윤씨에게 욕설을 하자 윤씨가 이별을 통보했던 것이다.

이별 통보 후 윤씨는 휴대전화를 꺼놓고 일주일 가까이 선씨의 연락을 무시했다. 결국 선씨는 12일 오후 렌터카를 빌려 윤씨 집 앞으로 갔다. 그리고 이날 밤 10시쯤 귀가하는 윤씨를 붙잡아 강제로 차에 태운 뒤 곧장 올림픽대로로 내달렸다. 선씨는 차 안에서 윤씨에게 다시 만남을 이어가자고 애원했다. 하지만 윤씨는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선씨는 결국 차량의 속도를 높이며 “같이 죽자”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차량이 암사대교 부근에 진입하자 겁이 난 윤씨는 핸들을 꺾었다. 차량은 좌측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겨우 멈춰섰다.

이 사고로 윤씨는 전치 6주, 선씨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현장에 출동한 강동경찰서 사고조사계 경찰관은 병원으로 이송된 윤씨로부터 자신이 납치된 것이라는 진술을 받았다.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납치극’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사건은 곧장 강력팀으로 인계됐다. 경찰은 사고 현장 인근에서 흉기도 발견했다. 흉기는 선씨가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가지고 있다가 사고가 나자 인근 배수로에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에서 선씨는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흉기는 자해를 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22일 선씨를 감금치상 혐의로 구속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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