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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새누리당의 뒤늦은 ‘공기업 개혁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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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누리당이 강도 높은 공기업 개혁의 칼을 꺼내 들었다. 만성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공기업을 퇴출시키고, 부채가 많은 공기업의 자산과 자회사를 대대적으로 정리하겠다고 한다. 또 공기업 임직원의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해 성과주의를 도입하고, 공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와 우월적인 지위 남용 행위를 막을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한전과 가스공사, 철도공사 등 문제가 심각한 7대 공기업에 대해선 구체적인 개편방안까지 마련했다.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온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행태를 바로잡고,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다.

  지난 4월 출범한 새누리당의 경제혁신특별위원회 공기업개혁분과 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공기업 개혁안을 내놓고 19일 공청회를 열었다. 이를 토대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도 밝혔다. 우리는 각종 민생법안과 경제활성화 법안이 세월호 특별법 파동에 막혀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는 가운데 여당인 새누리당이 나름대로 공기업 개혁의 의지를 천명하고 이를 입법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특히 그동안 정치권이 공기업 임직원과 노동조합의 반발을 의식해 머뭇거렸던 공기업 개혁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로 한 것은 용기 있는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모처럼 생산적인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이번에 내놓은 공기업 개혁안은 발표 시기와 내용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행태와 부실경영을 타파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고,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면적인 공공기관 정상화 작업에 착수해 방만경영 해소와 부채감축 노력을 기울여 왔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 전체를 놓고 대대적인 구조개혁이 이미 1년 동안 진행돼 이제 하나 둘씩 그 성과를 거두고 있는 참이다. 이 판에 새누리당이 뒤늦게 공기업 개혁안을 발표한 것은 아무래도 뒷북치기란 인상이 짙다. 내용 면에서도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과 대부분 겹치거나, 일부 다른 내용은 현실성이 떨어져 실행이 어려워 보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당이 정부와 협의 없이 독자적인 공기업 개혁안을 내놓는 바람에 국민들에게 혼선을 불러일으키고, 해당 공기업과 노조에 불필요한 거부감과 반발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어렵사리 노조와 합의를 이끌어낸 공공기관 정상화방안마저 흔들릴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새누리당이 공기업 개혁 원칙을 천명하는 것은 좋지만,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1년 동안 추진해 온 정책을 새삼스럽게 따로 내놓는 것은 책임 있는 여당의 자세가 아니다. 그보다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을 검토해 개선점을 지적하고, 긴밀한 협의를 통해 입법화를 지원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