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옆엔 안 돼 … 입주 막힌 노인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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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노인복지시설 앞에 주민들이 지난달 18일 설치한 농성용 천막과 현수막.

“주택가 한 가운데 요양원이 웬말이냐!”

 지난달 10일 오후 7시쯤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주택가 골목. 이 동네 주민과 상인 40여 명이 노인복지시설 입주반대 집회를 열었다. 7월 말 원룸 사업용 5층 건물 1층에 노인복지시설 ‘사랑가득데이케어’가 문을 열자 집단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구급차도 들어오기 힘든 좁은 골목에 치매 노인들이 머무는 시설을 세웠다가 장성 요양병원 같이 화재가 발생하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했다. 주민대표 정모(74)씨가 확성기로 “용산구청이 주민 동의없이 시설 설립을 용인했다”고 외치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주민들은 구청장 면담을 요구했다. 이어 같은 달 26일 용산구청 노인복지과에 청파동 주민 820명의 반대 서명이 담긴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이튿날인 27일 구청 측은 “복지시설 설립 신고서를 접수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노인복지시설 입주는 좌절됐다. 시설 관계자 이선희(52·여)씨는 “우리 센터는 경증치매 노인들이 주간에만 머무는 곳”이라며 “그런데 주민들은 혐오시설로 오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데이케어센터는 일반 가정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오전 9시~오후 6시 건강지원·치매예방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재가(在家) 노인복지시설’이라고도 한다.

 노인복지시설 입주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는 곳은 여기 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서울 도봉구 창동의 한 빌라에 문을 연 노인복지시설(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E케어’ 대표 강모(43·여)씨는 일부 주민들을 영업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고의로 승강기의 전원을 끄고 차량의 주차를 방해해서다. 이에 집단 민원을 우려한 도봉구청이 시설에 대해 직권취소명령을 내리자 강씨는 구청을 상대로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4월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에도 재가노인복지시설이 들어설 뻔 했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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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지난 2년 간 공동주택에 들어서는 노인복지시설 관계자와 주민간 고소·고발 등 분쟁이 진행되거나 집단 민원이 발생한 곳은 총 6곳이다. 특히 2009년에 비해 2013년 서울에선 노인복지시설 585곳이 증가했는데 이중 311개소(53%)가 대부분 공동주택에 들어서는 노인공동생활가정·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재가노인복지시설이었다.

 주민들이 시설 입주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집값이 떨어지거나 상권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서다. 도봉구 창동에 사는 박모(65·여)씨는 “빌라에 노인복지시설이 들어오자 집 보러 오는 사람들 발길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현행법도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노인복지법 제55조는 “노인복지시설은 지자체장에게 신고만 하면 공동주택에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집합건물법 5조는 “주민 동의없이 공동주택을 주거 외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고 제한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시설 관계자들은 노인복지법을 설치 근거로 내세우고, 주민들은 집합건물법을 설치반대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인재근 의원은 “국회 법제실 검토를 거쳐 노인복지법과 집합건물법이 충돌하지 않도록 관련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장혁진 기자

◆노인공동생활가정·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재가노인복지시설=시설의 용도와 형태에 따라 분류한 노인시설들. 공동생활가정·요양공동생활가정은 가정과 유사한 주거 조건을 갖춘 그룹홈 방식이다. 이중 ‘요양공동가정’은 치매 등 노인성질환을 가진 노인만이 대상이다. 재가노인복지시설은 방문요양서비스·주야간보호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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