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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까지 찍고 싶었다" … 노순택의 '수상한 사진' 2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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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회가 썩어야 예술이 잘 된다. 서울은 많이 썩었기 때문에 예술이 잘 될 것이다.”

 17일 오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노순택(43·사진)은 백남준(1932~2006)의 말을 인용했다. 노씨는 국립현대미술관의 ‘2014 올해의 작가’에 선정됐다. 국내 유일의 ‘국립’ 미술관에서 1995년부터 매년 선정해 온 한국 미술의 대표 작가에 사진가가 꼽힌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20년 가까이 국가 권력의 모순을 쫓아다니며 고발하고 조롱하는 사진을 찍었던 노씨다. 소감은 이랬다. “수상한 시절에 수상한 작업으로 수상까지 했다.”

 그의 이번 전시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은 국민을 바라보는 국가 기관의 시선을 다루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따라다니는 카메라, 그 현장을 쫓는 작가 자신의 카메라의 시선이 중첩된다. ‘무능한 풍경’이란 잔인하지만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풍경을, ‘젊은 뱀’은 다른 매체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뜨겁고 교활한 사진의 속성을 뜻한다. 최근 사회적 참사를 겪으면서 언론을, 사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작가의 자기 반성이 담겼다.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P-XⅢ050101’(100×77.5㎝, 2013)은 사건 현장에 늘 자리하는 사진가들을 담았다. [사진가 노순택]

 노씨는 분단 현실을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해 왔다. 오랜 시간 고착된 사실처럼 무심코 받아들여지지만 분단이 실은 우리 일상 가까이 있으며,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전시장은 평택 대추리 미군 기지, 북한 아리랑 공연, 용산 참사, 연평도 포격사건 등에서 그가 찍어온 수많은 사진들로 이뤄져 있다. 사건 현장의 풍경, 그곳의 애달픈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야 하는 이들을 찍었다. 때문에 전시장은 우리의 지난 20년의 압축판이자 한국 현대사의 증언록이다. 인화한 사진에 노씨는 단정한 손글씨로 짧은 글을 적어 내려갔다. 거기엔 찍힌 사람들의 사연과 찍은 그의 사정을 담았다.

 심사위원단은 노씨가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다루면서 카메라의 본질과 사진작가로서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며, 성취도가 높고 현장의 격렬함에도 우리의 인식을 뒤트는 유머감각이 뛰어난 점이 인상 깊다”고 평했다. 심사엔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숙경 런던 테이트 아-태 리서치 센터 큐레이터,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구로다 라이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학예실장 등이 참여했다.

 “사진은 설령 누군가의 고통을 찍더라도 그것을 아주 근사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근사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노씨는 “나는 의심에 기반해 작업을 해 왔다. 사건의 극적 분수령이 아닌 그 전과 후를 보여줌으로써 감동과 설득을 배제한 채 보는 이로 하여금 사고하고, 석연치 않게끔 하는 사진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2014’는 4인의 후보작가 전시다. 연초에 후보 작가를 선정한 뒤 각 4000만원 상당의 창작 지원금으로 전시를 꾸렸다. 미술관이 있는 서울대공원의 롤러코스터를 연상시키는 비틀린 구조물로 전시장을 채운 구동희, 아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간극을 탐구한 김신일, 몸·고문·욕망을 키워드로 금기에 도전한 장지아 등 4인 4색의 전시가 지금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형성한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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