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핵은 빠지고 비료만 준 남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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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이 어제 끝난 당국회담에서 중단됐던 장관급 회담 재개 등 3개 항에 합의했다. 비료 20만t을 북한에 제공하고 평양에서 열리는 6.15 통일축전행사에 장관급을 단장으로 하는 양측 당국 대표단을 파견키로 한 것이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북한 핵문제는 공동보도문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하나마나한 표현으로 마무리지었다.

한마디로 비료 20만t 제공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방북'을 교환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북핵 문제를 이처럼 소홀히 다룰 수 있는가. 북핵 문제를 걱정하는 국민과 이번 회담을 예의주시한 미.일 등 주변국들의 입장은 이제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것인가. 특히 핵 문제에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 않는 북한에 우리만 지원한다면 어떻게 효율적인 공조책이 마련될 수 있겠는가. 특히 북한이 이번에도 핵문제 해결에 관심을 표명하지 않으면 한국 정부도 기존의 대북 유화책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않겠느냐는 판단을 했을 미국이 우리 정부의 이번 태도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주목된다.

이번 회담에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점은 진행방식이 불투명했다는 점이다. 이미 첫날 회담에서 3개 항의 공동보도문 내용에 대한 골격에 양측이 원칙적으로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회담 벽두부터 우리 측이 비료 20만t 제공을 약속한 것이나, 통일축전에 당국 대표자가 참가한다는데 손쉽게 합의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첫날 회담에서 '핵문제 협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해 마치 진지한 협의가 있는 것처럼 했다가 끝내 우리 입장은 전혀 반영시키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림은 다 그려놓고도'회담을 하루 연장하는 등 '진통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는 점을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특히 이번 회담을 통해 나라의 장래가 걸린 남북 문제를 특정인의 정치 행보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했다는 의혹도 해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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