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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목요일] 자녀 '수포자' 안 만들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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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12일 오후 4시. 서울 상암동 YTN 공개홀에서 열린 ‘수학으로 고민하는 부모를 위한 강연회’에 참석한 학부모·자녀 20여 명의 눈이 강단에 선 최수일 수학교육연구소장에게 쏠렸다. 최 소장이 “수학엔 공식을 암기해 푸는 수학, 개념을 배우는 수학 두 가지가 있다”며 “전자대로 하면 학생이 쉽게 흥미를 잃는다. 하지만 후자대로 하면 점수는 늦게 오를지 몰라도 흥미가 붙어 결국엔 수학을 잘할 수 있다”고 하자 참석자들이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 소장이 “많이 배운 학부모일수록 자녀를 가르치려 드는 경우가 많다”며 “그럴수록 들어주는 게 부모 역할”이라고 하자 한 학부모는 “맞다”며 박수를 쳤다.

 두 번째 강사로 나선 조성실 이문초 교사는 게임으로 배우는 수학을 소개했다. 한 학부모가 손을 들고 “아이가 두 자릿수 덧셈부터 헷갈려 하는데 어떻게 가르치면 되느냐”고 물었다. 조 교사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처음 걸리는 수학의 ‘문턱’”이라며 “바둑알 100개를 늘어놓고 더하게 한 다음 10개씩 묶음과 낱개로 떼어 놓는 연습을 반복하면 나아진다”고 조언했다. 강연을 주관한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조준희 연구원은 “‘나도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는데 자녀를 어떻게 가르칠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많아 기획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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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포자 문제가 심각한 것은 통계로 드러난다.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목별 점수를 100점 만점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30점 미만을 받은 최하위권 비율은 수학이 34.1%로 국어(4.6%)·영어(7.1%)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입시업체 하늘교육이 학교 알리미에 공개된 전국 일반고 1658곳의 내신 평균 점수를 분석한 결과 수학 내신이 50점 미만인 경우가 48.1%였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내신 문제는 학교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수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교생 절반이 수포자란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근덕 강원도 사내고 수학교사는 “한 반에서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7~8명꼴”이라며 “대다수 학생은 수학을 ‘외계어’로 듣는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수학은 포기할 수 없는 숙제다. 이공계 기초 학문인 데다 사고력 발달에 좋은 점 등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이기 때문이다. 입시업체 유웨이중앙교육이 지난 5월 수험생 731명을 설문한 결과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과목은 수학(50%)·영어(28%)·국어(10%)·사회(8%)·과학(5%) 순이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예나 지금이나 수학을 포기하고선 원하는 대학에 붙기 어렵다”며 “최근처럼 영어의 경우 만점을 받지 않으면 1등급(상위 4%)에 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쉬운 수능’ 추세에선 사실상 수학이 당락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수포자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수학교육 전문가들은 “유치원~초등학교 시절 수학을 처음 접할 때 흥미를 붙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흥미를 붙게 하는 제1원칙으로 ‘문제 풀이에만 익숙한 학생들에게 풀이 과정을 말로 설명하게 하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틀린 문제는 물론이고 맞은 문제도 말로 풀도록 하는 게 포인트다. 김진호 대구교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학부모들은 대부분 자녀에게 ‘2×3’ 문제를 풀도록 하고 ‘6’이란 대답을 내놓으면 넘어간다. 하지만 말로 물어 ‘두 개씩 세 묶음을 하면 여섯 개가 된다’고 답하도록 해야 자녀가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한다. 그럴 때 부모가 던지면 좋은 질문이 있다. ‘문제에서 뭘 구하라고 하는 걸까?’ ‘앞에서 배운 개념을 다시 찾아볼까?’ ‘엄마는 더하는 방법이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앞에서 푼 문제와 이 문제는 어떻게 다르지?’ 등이다. 이창주 전 한영고 교사는 “문제를 틀렸을 때 ‘왜 모르느냐’고 나무라면 자녀는 혼나는 상황을 피하려 이해한 척만 한다. ‘좀 더 고민해 볼까’ ‘다른 식으로 풀까’ 식으로 접근하면 좋다”며 “부모 대신 자녀 스스로 틀린 문제를 고칠 시간을 하루든 이틀이든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대희 청주교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끝까지 해법·정답을 알려 주지 않고 단계별 힌트만 줘도 자녀가 다시 어려운 문제에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실생활에서, 게임을 통해 수학을 배우자는 것도 공통된 조언이다. 이보영 EBS 중학수학 강사는 “엄마의 역할은 수학 문제를 대신 풀어 주거나 해답 찾는 걸 도와주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배울 수 있도록 접근방법을 다양하게 해 주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2500원을 줄 테니 원하는 것을 골라오렴. 다만 딱 맞춰야 한다’며 덧·뺄셈을, 가위바위보를 하며 확률의 원리를 익히도록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조성실 이문초 교사는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칠 때 시·분·초 개념부터 알려 주기보다 엄마와 자녀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길 때마다 큰 바늘을 한 칸씩 옮기는 식으로 게임을 하면 좋다”고 귀띔했다.

 중·고등학생 자녀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단 ‘학습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교육과정·학년은 잊으란 얘기다.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는 “수학은 계단처럼 밟아 올라가는 학문”이라며 “3차 방정식을 못 푸는 고등학생 자녀라면 2차 방정식을 설명한 중3 교과서부터 펴 들어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1차 방정식을 가르치는 중1 교과서로 넘어가라”고 충고했다. 이 교수는 “고교 수학을 모른다고 해서 고교 내용만 파고들면 10문제 중 10문제 전부를 다 포기하는 셈”이라며 “몇 문제라도 맞히고 싶다면 중학교·초등학교 과정부터 다시 짚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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