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사상에도 심취한 세계인 노벨 문학상 탄 「가네티」의 생애와 문학-안인길 <건국대 교수·독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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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엘리아스·카네티」(76)는 유대인과 스폐인 계의 피를 받고 1905년 7월25일 불가리아의 루세에서 태어난 독일어작가로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1938년 오스트리아에서 런던으로 망명하여 그후 주로 런던과 스위스 취리히에서 살고있다.
「카네티」는 여러 나라 말로 교육받았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그후 파리·취리히 대학을 거쳐 빈 대학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네티」는 60년대에 들어와서 이미 35년 빈에서 출판됐던 그의 3부 작 소설『현혹』 이 발견됨으로써 뒤늦게 독일문단에 알려졌다.
그가 세계문단에서 화제를 모으게 된 것은 독일 다롬슈타트 시 소재 독어독문학 아카데미가 1972년 소설『현혹』을 그해 뷔히너 상수상작으로 결정, 문학상을 수여한데서 비롯됐다.
「하인리히·뵐」「막스·프리시」「귄터·그라스」등 중요한 현역독일어작가는 거의 모두가 이 문학상 수상자들이다.
소설 『현혹』은 마치 「카프카」의 작품들이 외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고 독일로 되돌아 온 것처럼 영국·프랑스·미국 등지에서 많은 독자를 갖게되고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은 후 독일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제임즈·조이스」의『율리시즈』를 능가한 작품이라는 평도 받았다.
특히 「헤르만· 보로호」는 이 작품을 『추상적인 영혼의 풍경으로 악마적인 생활로 충만 돼 있다』고 평한 적이 있다.
소설『현혹』(Die Blendung)은 현실과 대결하는 정신, 그리고 세계 속에서 외롭게 반응하는 인간의 보람과 고통을 은유와 해학으로 다룬 비극적 인간코미디다.
「발자크」의 인간코미디에 영향을 받아 쓴 「카네티」는 머리가 돈 인간들의 희극을 큰 규모로 여러 권의 소설로 쓸 계획을 했으나 결국 『현혹』만이 성공했다.
이 소설은 3부 작의 4백12페이지로 각 부는 서로 다른 제목을 가지고 있다. 제1부는 『세계가 없는 머리』, 제2부는 『머리가 없는 세계』, 제3부는 『머리 속의 세계』다.
각 장의 소제목들은 내용의 특징에 따른 단어들로 점철돼 있다.
「책」「일」「사서관」「잃는다」등이 주인공「킨」교수의 세계에 대한 개념을 이루고 있다.
「불이붙는다」「피」등의 소제목들도 이미 이 소설의 종말에 일어날 사건들을 암시하고있다.
「엘리아스·카네티」는 「토마스·만」「알프레트·데블린」「로베르트·무질」등의 유대계 독일어 작가에 속한다.
유대인작가는 모두 「틀를러」의 제3제국에서 망명한 작가들로 세계도처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들의 망명문학이 없었더라면 독일어문학은 전혀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라. 이들의 작품에는 정치성이 있는가하면 예리한 예술감각도 지니고 있다.
또 언어에 아름다운 음악성이 있고 감정표현이 섬세하다. 그리고 대개 코즈머폴리턴적이다.
「카네티」도 이러한 유대망명작가의 특성을 지닌 작품을 썼다.
1972년 출판된 그의 회상록『구원받은 언어』는 그의 고난에 찬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회고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인종문제로 갈등하던 회상이 절실하다.
또 희곡으로 『결혼』『공허의 희극』『시한부 인간』 등도 이런 계열이다. 그는 인종학자와 철학자로서의 저서로 『대중과 권력의 관계』를 썼는데 권력에 소외된 자신과 같은 유대인들을 염두에 둔 저서로 볼 수 있다.
그는 또 서양만이 아니라 중국사상을 깊이 있게 알고 범 세계를 다룬 작품을 썼다. 그의 동양사상, 특히 공자사상에 대한 관심은 작품 『현혹』에「사십불혹」 등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는 평론으로도 활약해『다른 소송』이라는 카프카론을 쓰기도 했다.
일반적으로「카네티」의 소설·희곡·수필작품은 상아탑과 소수 지식인 계층을 제외한 일반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낭만주의와 표현주의적 기법을 잘 조화시킨 그의 작품은 독일어권의 현대문학에서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이처럼 높은 문학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까닭은 대중성이 없다는 이유 외에도 『모든 유대인이 당하는 불우한 시대적 상황 때문』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그의 문학은 결실을 보게 된 셈이다.
또 불가리아태생으로는 첫 수상이지만 독일어로 작품을 써왔고 여러 나라에서 살아온 글자 그대로의 코즈머폴리턴이란 점에서 더욱 큰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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