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12시간 택시 민심 청취 … 쇼는 쇼인데 힘든 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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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에 내정된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16일부터 3일간 택시 운전대를 잡고 대구지역 민심 청취에 나섰다. [프리랜서 공정식]

파란 셔츠에 빨간 조끼를 입은 이가 택시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지난 4일 대구 택시기사 자격증을 딴 초짜 기사인 그는 시내 길이 어둡다. “내비(내비게이션)가 제일 중요하다”며 너스레를 떤 뒤 천천히 택시회사(KS택시)를 빠져나와 대구 명물인 수성못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새누리당의 보수혁신위원장에 내정된 김문수 전 경기지사다. 김 전 지사는 학창 시절을 보낸 대구에서 16일부터 3일간 택시를 몰며 민심을 들을 계획이다. 경기지사 시절에도 지역에서 40여 차례 택시 운전을 했다. 오전 10시, 그가 모는 택시에 첫 손님이 됐다. “기자가 손님으로 탄 건 처음”이란다.

 -일부는 택시 운전을 쇼라고 깎아내린다.

 “쇼 맞다. 하루 열두 시간 모는 힘든 쇼다. 택시 면허를 따려면 공부도 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쇼다.”

 -에피소드도 많겠다.

 “많지. 유명인이 모는 택시는 돈 안 내도 되는 줄 알고 그냥 가버리는 손님이 가끔 있다. 그럼 그 돈을 내가 채워야 하는데, 골치 아프다.(웃음)”

 -사람들이 알아보나.

 “젊은이는 거의 모른다. 나이 좀 있는 분들은 거의 알고.”

 -혁신위원장이 된다. 가장 먼저 뭘 할 건가.

 “좀 천천히 보자. 지켜보는 국민이 ‘저기(혁신위)에 뭔가 많다’는 너무 큰 기대를 가져도 안 되고, 뻔한 느낌을 줘서도 안 된다.”

 -7·30 재·보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청을 뿌리쳤다. 이번엔 받아들였다.

 “경기지사를 8년 했다. 지난 6월 30일에 임기를 마치고, 그 다음 날부터 서울로 지역구를 옮겨 선거운동을 한다는 게 도민들이 보기에도 바람직하지 않고 서울시민이 보기에도, 스스로도 어색했다. 국회의원을 다시 원했다면 경기도에서 출마했을 거다. 혁신위원장을 수락한 것은 속죄하는 심정으로 국민의 말씀을 듣고, 뜻에 맞는 정치를 만들어보기 위해서다.”

 -김무성 대표, 잘하고 있나?

 “…. 체포동의안 때 힘들었지. 잘하다가도 저런 일 있으면 무너진다. 그래서 정치가 어렵다.”

 그는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행태를 가장 큰 부조리로 지목했다. 혁신위원장으로서 이런 특권을 반드시 내려놓겠다고 강조했다.

 “범죄자를 숨겨주고 감싸주는 국회는 필요 없다.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정치권만 못 들은 척할 수 없다. 결단과 실천이 필요하다.”

 -혁신위원장의 가장 큰 과제는 뭔가.

 “김 대표를 만났을 때 ‘혁신위가 뭘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바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한국판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강한 의지를 내비치더라. 나도 계속 주장해왔고,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때 약속한 사안이다. 야당도 마찬가지지만 잘 안 된다. 정당의 ‘큰손’들이 공천권이라는 특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지 않아서다. 이 집착을 끊어야 한다.”

 -김 대표와는 잠재적인 경쟁자 아닌가.

 “경쟁자이기 이전에 초선 때부터 친구이자 동료로 오랜 세월 같이해 왔다. 국민이 보기 좋은 정치를 위해 함께 협력할 거다. 특권정치, 부패정치와 결별을 선언해야 민생정치가 가능하다.”

 -청와대와의 관계 설정도 관심이다. 박 대통령과 관계가 매끄럽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관계 좋다(웃음). 박 대통령이 하려는 사심 없는 봉사와 국가 발전, 꼭 뒷받침하겠다. 사적으로 만나 드릴 말씀은 있다. 여러 민심을 전하고 싶다.”

 -어떤 민심인가.

 “뭐, 차츰….”

◆9만원 벌어 사납금 못 채워= 김 전 지사와의 인터뷰 대부분은 택시 안의 손님 자격으로 했다. 수성못 주변에서 내리니 요금이 5100원이었다. 1만원을 건네자 “100원은 깎아주겠다”며 5000원을 거슬러줬다. 그는 이날 9만원을 벌었다. 사납금 12만3000원에는 못 미쳤다. 하지만 운행 시간이 7시간밖에 안 돼 모자란 액수를 채워낼 필요가 없다고 했단다. 그는 18일 점심때까지 택시를 몬 뒤, 오후 혁신위원장 자격으로 서울 여의도에 돌아온다.

대구=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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