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고대하는 성화의 고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88년 서울 올림픽』-그 제전에 타오를 성화의 불길을 당길 올림피아.
고대그리스의 올림픽대회가 열렸고 현대 올림픽의 상징인 성화가 4년마다 불붙여지는 올림피아는 강렬한 가을 햇볕을 받으면서 폐허의 모습으로 들판에 펼쳐져 있었다.
오랜 풍상에 마모되고 지진으로 지붕과 벽이 허물어져 이제는 대리석기둥만 마치 불탄 숲처럼 엉성하게 서있고, 그아래로 깨진 석편들이 아직도 견고한채 남아있는 대리석 토대위에 어지럽게 딩굴고 있다.
한때 그리스 압전들이 당당하게 자랑하던 대리석 건축의 우아한 균형미는 아득한 시간을 넘어서 상상력을 통해서만 아련히 떠오를뿐이다.
무화과·올리브·월계수등 이국적 나무들이 잡초와 함께 경내를 침범하고있는 가운데 제우스신전터를 중심으로 성화가 점화되는 헤라신신전터가 북쪽에, 타원형 경기장은 서쪽변경의 성역 밖에 놓여있다.
올림피아 성역을 찾는 행위는 지리적 거리보다도 시간의 장벽을 뚫고와야된다는 어느 그리스인의 충고가 이 폐허를 무겁게 휘감고 있는 역사의 정적을 실제로 느끼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올림픽경기는 기원전 776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거행돼온 종교행사의 일부였다.
그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고대그리스인들은 올림픽때만 되면 평화적경쟁을 위해 무기를 놓았다. l천년동안 이경기가 계속되면서 단한번도 모임을 거른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현대올림픽이 양차대전으로 1916년, 40년, 44년등 3차례나 중단된 것에 비하면 얼마나 자랑스러운 기록인가.
훗날 로마제국의「네로」황제는 자기 스스로 경기에 참가해서 다른선수가 목숨이 아까와 승리를 그에게 양보하게 되는 「시합부정」의 척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는 예외이고 올림릭 전통은 계속 건전하게 계승됐다.
성화는 헤라신전의 폐허위에서 오목렌즈형태로된 강철거울을 통해 집중되는 태양열에서 받아낸다.
성화점화의식에는 그리스 고전무용단원중에서 선발된 10명의 미녀들이 고대 그리스 의상을 입고 참가한다.
점화식은 대회주최국의 국가연주로시작된다. 따라서 88년에는 우리 애국가가 이 성역에 울려 퍼지게된다.
점화된 성화는 그리스인 주자에 의해 먼저 운송되는데 비행기로 운송할경우 아테네 공항까지 가서 주최국 주자에게 넘켜지고 육로로 운송할 경우 그리스국경까지 그리스주자가 운송하고 그 다음은 다음통과국 주자가 운송한다.
한국이 육로로 운송할경우 불가리아∼루마니아∼소련∼중공∼북한주자들을 동원해서 판문점에서 한국주자가인수해야 한다.
성화주자는 1km씩만 뛰고 다음 주자로 넘겨주도록 되어있는데 주최국은 주자들이 가질 성화봉과 연료, 운동복및 운동화를 모두 제공해야한다.
80년 모스크바대회때는 올림피아에서 모스크바까지 5천명의 주자가 동원되었는데 한국의 경우 육로운송을 하려면 수만명을 동윈해야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육로운송에는 정치적 문제말고도 엄청난 경비가 소요된다.
아테네시내에는 1896년 l차올림픽대회가 개최된, 대리석으로된 타원형 경기장이 있는데, 그 입구에는 역대올림픽대회가 열린 연도와 지명이 연대순으로 적힌 동판이 박혀있다.
이 동판은 이제 거의 채워져서 끝으로 2줄밖에 더 새길 여백이 없다. 따라서 84년의 로스앤젤레스대회와 88년의 서울대회가 새겨지면 이 동관은 꽉차고 새로운 동판이 옆에 세워져야 하게되어 있다.
중위로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는 한그리스 언론인은 88년 서울 올림픽이 결정된것은 감격적이었다면서『꼭참관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림피아 고도에서><글·사진 장두성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