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독과점… 문제는 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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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신문 3사의 시장 점유율이 (독과점 기준인) 75%를 넘는다면 문제 아니겠는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지난 15일 국회에서 이런 취지로 발언하자, 많은 언론학자가 "정작 문제인 방송에 대해선 눈을 감고, 하필이면 근거 없는 수치로 일부 신문을 압박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러자 이틀 후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같은 국회에서 "신문의 시장 점유율은 계산하기 어렵다"고 한발 후퇴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정부가 새 언론정책을 밀고나가기 위해 75라는 숫자가 꼭 필요했던 것일까. 여기저기서 '언론 독과점'운운하는데 과연 그 실상은 어떤가.

지난주 시청률 1위를 기록한 MBC 일일 연속극 '인어아가씨'.

일 때문에 드라마를 보지 못했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드라마 전문 채널인 MBC 드라마넷이 바로 다음날 두차례에 걸쳐 재방송하기 때문이다. 주중 미니시리즈 역시 다시 볼 수 있는 길이 마련돼 있다.

그리고 이런 영향만은 아니겠지만, 드라마넷은 지난 7~13일 케이블 전체에서 시청률 4위를, 위성에서 1위를 차지했다. 케이블.위성 등 뉴미디어에도 거대 지상파 방송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는 셈이다.

제일기획 미디어전략연구소가 2002년 광고비를 조사한 내부자료에 따르면 KBS.MBC.SBS '빅 3'는 전체 지상파 TV 광고시장의 88.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이들 3사는 지상파 TV 광고 매출액의 87.1%를 점유했다. 케이블 시장까지 포함할 경우에도 79.1%였다.

이밖에 본사 취재팀이 시청률 조사기관의 협조를 얻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시청행태를 조사한 결과에서 이들 3개사는 72.5%의 시청 점유율을 보였다.

지상파 3개사는 아무나 쉽게 진입할 수 없는 보호막 속에서 이처럼 막강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특히 엄청난 광고 물량에도 불구하고 KBS와 MBC는 '공영'이란 우산으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들 지상파 방송사들이 기존의 우세한 매체력을 이용, 거의 무제한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상파 3개사는 현재 케이블.위성에서 각각 서너개씩의 채널을 운영 중인데, 드라마.영화.스포츠 등 '물 좋은' 장르에 집중돼 있다.

이에 대해 지상파 방송사들은 "기존의 콘텐츠를 재활용하고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는 게 뭐가 나쁘냐"고 반문한다.

또 드라마 채널을 제외하고는 적자 채널도 많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그러나 중소 프로그램 공급업체(PP)들은 "뉴미디어란 다양한 콘텐츠를 육성하기 위한 것인데, 지상파 방송사들이 발디딜 공간 자체를 뺏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보다 기존의 콘텐츠를 재탕하는 수준이라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이 방송사들은 차세대 선도 사업으로 통하는 디지털 멀티미디어방송(DMB)사업에서도 후발업체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한 상태다.

이와 관련, 한 언론학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대부분 언론학자들이 방송 독과점의 폐해를 잘 알고 있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의 영향력 때문에 직접 비판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며 "정부가 '독과점'이란 화두를 꺼냈다면 우선 방송 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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