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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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에선 요즘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소리는 없지만 빛깔과 모양은 요란한 혁명. 근착미주간지 유에스 뉴스 월드 앤드 리프트는 그것을 『180도의 전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은 콧수염을 기르고, 포도주를 마시며 1950년대의 회고조음악을 듣는다. 남자가 미용수술을 받는 것은 예사고 독신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결혼식도 요즘 약식은 보기 어려워졌다. 신부는 으례 레이스로 성장을 한 우아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의식은 장중해졌다. 귀족적인 복고풍이다.
그런 변화는 의식주 모든 분야에 파급되고 있다. 금연자가 늘고 대학에선 비즈니스과정이 인기학과로 각광을 받는 등. 우리 나라에선 재즈체조로 알려진 에어로빅 댄싱이 유행하고 점심시간이면 체조를 하는 직장인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뉴욕타임즈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분명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다. 『…하는 길』(How to…)로 시작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제목만 보아도 「자기개선」을 주제로 다룬 책들인 것을 알 수 있다.
베스트셀러 15종 가운데 9권이 『…하는 길』 유의 책이었다.
그다음 4권이 다이어트에 관한 책. 미용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보다는 격이 높은 건강을 중요시한다는 얘기도 된다.
이제 미국에선 장원이나 블루진, 히피모양의 옷차림과 행색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따. 한낱 촌스러움의 상징일 뿐이다. 정치서적을 읽는 사람, 과식하는 사람, 요란한 색깔의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떠들썩한 칵테일 파티도 이젠 한물 지나간 사교장이다. 수도 워싱턴과 같이 격식을 찾는 도시의 칵테일 파티에서도 스카치나 불러디 메어리즈를 마시는 사람이 줄었다.
디스코 춤의 열기도 이미 식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사람들은 테니스나 골프마저도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조깅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이런 풍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조지 워싱턴 대학의 사회학자 「아미타이·에트지오니」 교수는 새로운 시대의 징후라고 분석하고 있다. 『사려 깊은 단순성에서 벗어나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변화』라는 것이다.
「카터」시대는 성경귀절을 빌면 『등불을 켜서 되(승) 밑에 감추는 때』었지만, 「레이건」의 시대는 『인생을 보다 값있게 즐기자』는 무드인 것 같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그런 대로 엔조이하자는 것이다.공연히 궁상을 부릴 것도, 공연히 유난스러울 것도 없는 인간적인 사람의 발견일, 이것이 요즘의 미국풍인 것 같다. 좀 의젓하고 성열한 중년의 아취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술렁거리던 사회가 비로소 중심과 무게를 찾은 것 같다. 일각에선 자포자기의 풍조라는 분석도 있지만 먼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침착하고 정숙해진 미국을 보는 인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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