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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도와달라’고 하길래 비대위원장 수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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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호 03면

이상돈(왼쪽) 중앙대 명예교수가 새누리당 비대위원이던 2012년 11월 30일 여의도 당사에서 박근혜 대선후보의 발언을 듣고 있다. [중앙포토]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12일 저녁 두 차례에 걸친 전화로 중앙SUNDAY의 인터뷰에 응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영입이 공식 무산된 시점이었다. 그는 박근혜계 핵심이었던 자신이 새누리당을 떠난 이유와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직 제안을 받아들인 배경, 야당 내부 반발로 영입이 무산된 소회 등을 차분한 어조로 밝혔다. ‘여권 내 야당’을 자처하며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쓴소리를 해 온 그는 “청와대의 독선·불통과 여당의 무능을 참을 수 없어 야당행을 고려했지만 그쪽도 분열과 경직성이 워낙 강해 쪼개질 우려가 크더라”며 “양측 모두 대화하며 제3의 길을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야당 영입 무산된 ‘박근혜 공신’ 이상돈 중앙대 명예 교수

-친박(親朴) 핵심이 새정치연합의 비대위원장을 맡는 드라마는 정말 물 건너간 건가.
“방금 전 새정치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에게서 ‘(영입이 무산돼) 죄송하게 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나의 비대위원장 영입 가능성은 동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나 같은 외부인이 야당의 비대위원장이 되려면 당내에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 영입을 반대하는 의원이 절반이나 된다는 게 일찌감치 확인되지 않았나. 또 말은 안 하면서 속으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의원들도 있을 거다. 새정치연합은 (나를 영입하려는) 박 위원장 같은 전략가 집단과 탈레반식 강경세력으로 쪼개져 있음이 이번 파동을 통해 확실히 드러났다. 계파 갈등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또 있을까 싶다. 같은 야당 사람들끼리 이렇게 견해 차가 크다면 뜻 맞는 이들끼리 갈라서는 게 낫다는 목소리가 커질 듯하다.”

-비대위원장에 영입될 뻔한 전말을 들려달라.
“원래 박 위원장과 친하고 공감하는 바도 많다. 그는 내 칼럼의 애독자이기도 하다. 지난달 그가 위원장에 추대된 직후 ‘잠깐 보자’고 해 만났더니 ‘비대위원을 맡아 당을 도와달라’고 하더라. ‘말이 되는 얘기냐’고 일축했더니 ‘진담이다, 맡아 달라’고 재차 부탁하더라. ‘밖에서 돕겠다’고 답해 줬다. 그 뒤로도 계속 연락이 오다가 박 위원장이 세월호특별법 협상에 매달리면서 잠시 뜸해졌다.”

- 그러면 비대위원장 제안은 언제 받았나.
“나흘 전쯤 박 위원장이 다시 연락을 해 왔다. ‘비대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놀라서 ‘무슨 소리냐, 안 한다’고 했다. 그러자 박 위원장이 너무 간절하게 부탁하더라. ‘(안 맡아 주면) 저는 아무것도 못합니다’는 식이었다. ‘정 그렇다면 생각은 해 보겠다’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박 위원장이 ‘동의한 걸로 알겠다. 언론에 흘리겠다’며 전화를 끊더라. 이튿날 아침 정말 나를 비대위원장에 영입한다는 뉴스가 뜨더라.”

-기분이 어땠나.
“폭발력이 너무 컸다. 결과론이지만 박 위원장이 영입설을 미리 언론에 흘려 여론을 떠본 건 잘했다.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는 여론을 떠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합당한 끝에 조기 퇴진하고 말았지 않나.”

-영입 소식에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격렬히 반발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저열했다. 정청래 의원이 영입을 반대하며 단식까지 하겠다고 한 건 황당하더라. 내가 무슨 이권을 얻으려고 자리를 구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박 위원장이 당의 이런 현실을 좀 안일하게 생각했던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새정치연합의 강경파 의원들은 당이 우경화할 것이라 주장하던데.
“새정치연합이 다음 대선에서 집권하려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처럼 외연을 확대해 제3의 길을 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통해 보니 새정치연합 의원들 간에 시각 차가 너무 크더라. 도저히 제3의 길을 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 걸 확인했다.”

-문재인 의원과도 대화했나.
“박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직을 맡아 달라고 전화로 부탁해 왔을 때 내가 ‘문재인 의원과도 정말로 얘기가 됐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박 위원장이 ‘그분이 옆에 있다’며 문 의원을 바꿔 주더라. 내가 문 의원에게 ‘당내에서 내 영입에 대해 얼마나 논의가 돼 있느냐’고 물으니 문 의원은 ‘도와달라’며 비대위원장을 맡으라는 취지로 얘기하더라.”

- 그런데 왜 친노 의원들이 반대하나.
“야당의 특성상 (같은 계파라도) 의원들이 군대처럼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 아니겠나.”

-만일 비대위원장이 됐다면 무엇을 할 생각이었나.
“비대위원장은 무슨 벼슬이 아니다. 내년 초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전당대회까지 4~5개월간 당을 관리하는 자리다. 나는 이 당의 미래를 위해 당 대표를 뽑는 경선 룰만이라도 잘 만드는 게 비대위원장으로 할 일이라 생각했다. 새누리당이 경선 룰 하나만큼은 잘 만들어 놨다. 책임당원·대의원 투표에다 여론조사를 섞어 공정성 시비가 적은 편이다. 반면 야당은 제대로 된 경선 룰이 없어 늘 사고를 친다. 나는 새누리당에서 경선 룰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용되는지 경험해 본 데다 새정치연합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그래서 박 위원장이 나를 택한 것 아니겠나. 내가 비대위원장이 되면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 경선 과정을 비롯해 온갖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될 것 아니냐. 누구에게 이런 얘기를 듣겠나.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는데 새정치연합 사람들이 이상한 자존심 때문에 기회를 놓친 게 안타깝다.”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도 영입해 투톱 비대위원장 체제로 가려던 방안은 박 위원장에게 들었나.
“처음엔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 박 위원장이 비대위원장 후보로 나를 포함해 외부 인사 여러 명을 물색했지만 다들 고사하니 마지막 순간 나와 안 교수 투톱 카드를 던진 것 같다. 주로 교수들이 위원장 후보 리스트에 올랐다는데, 박 위원장이 대학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지 않나. 조국 서울대 교수나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현직이라 위원장 맡기가 쉽지 않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도 고령인 점이 걸림돌이다. 그러다 보니 현직이 아닌 나와 안 교수가 떠오른 듯하다.”

-박근혜 정부 탄생 공신 중 한 명이 어떻게 야당 비대위원장을 맡을 생각을 했나.
“마음이 떠났다. 이젠 정권이 교체돼야 할 것 같다. 정부가 계속 이렇게 (불통으로) 나가선 안 되잖나. 다음 정권까지 새누리당이 잡으면 MB(이명박) 정부 3기가 되는 것 아니냐.”

-박근혜 정부가 MB 2기 정부란 말인가.
“그렇다. MB 2기 정부이지 않은가. 현재 새누리당은 전부 친이(親李·이명박계)들로 채워지지 않았나. 또 MB 정부가 자원외교다, 4대강 개발이다 하면서 세금 80조원을 낭비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전임 정부의 국력 낭비를 계승한 셈이다. 그래 놓고 아무것도 아닌 데나 신경 쓰고 있다.”

- 그래도 여권 안에서 건전한 비판자로 남아 있는 게 맞지 않나.
“여권에서 나를 ‘건전한 비판자’로 받아들인 적이 없다.”

-지난달 15일 새누리당에 탈당계를 낸 것도 야당 비대위원장으로 갈 생각 때문이었나.
“아니다. 그때 이미 나는 더 이상 새누리당에 있을 의미가 없었다. (친박 핵심인) 서청원 의원과는 인간적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7·14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의원이 대표가 된 데 이어 그가 임명한 당직자들이 전부 친이(親李)계열로 채워지는 것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나는 과거 친이들과 싸운 사람 아닌가. 청와대가 불통인데 새누리당마저 친이당이 돼 버렸으니 탈당계를 낸 거다.”

-탈당에 이어 새정치연합으로 이적까지 할 뻔했으니 새누리당에서 섭섭하다는 반응을 듣지 않았나.
“아무 얘기가 없었다. 새누리당 당직자들은 원래 나와 소원한 친이계열이라 그런지 반응이 없었고, 친박 쪽에서도 청와대 정무수석을 비롯해 어떤 인사도 내게 전화 한 통 준 게 없다.”

-김무성 대표도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 행적 논란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책임이 있다”며 청와대의 불통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 대표가 그렇게 일갈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신문 칼럼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란 사람이 (대통령의 행적을) 남의 일처럼 말한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김 대표도 힘을 얻어 작심발언을 한 듯하다.”

-앞으로 새누리당이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겠나.
“자기들(새누리당)이 먼저 배신했지 내가 배신했나.”

-새누리당과는 영영 결별할 건가.
“이미 그런 상태인데 뭘 새삼스럽게 묻나.”

- 그럼 이젠 새정치연합과 일할 생각인가.
“새정치연합은 이 이상 못할 수 없는 위기상태다. 그러다 보니 앞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당이 분열해 색깔별로 새로운 정당들이 등장할 것이라 전망한다. 특히 이번 파동을 통해 그럴 가능성이 가시화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나라를 위해 건전한 야당은 꼭 필요하다. 지금은 새정치연합이 지리멸렬해 보이지만 총선까지 1년 반 넘게 시간이 있으니 지켜봐야 한다.”

-새정치연합이 분당하면 뜻이 맞는 세력에 합류할 생각인가.
“어떤 사람이 내게 농담이라며 ‘당신은 이제 박 위원장을 지옥까지 따라갈 신세’라고 하더라.(웃음) 내가 왜 지옥을 따라가나. 천국을 따라가야지. 만일 박 위원장이 분당해 딴 살림을 차린다면 그 당의 진정성과 철학을 따져 보고 (합류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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