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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판문점 들러 「긴장 상태」 체험|한일 각료회담 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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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상단독회담>
11일상오 부처별로 열린 개별 각료회담은 양측 수석대표인 노신영외무장관과 「소노다」(원전직)외상간의 회담이 2O분 늦는 이변으로부터 시작.
「마에다」(전전리일) 주일대사는 9시7분 호텔신라22층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마련된 회담장에 나타나 「소노다」외상이 다소 늦겠다고 통고한 뒤 12분쯤 다시 와 30분 정도 늦어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소노다」외상의 이 같은 지각은 내한 때부터 좋지 않았던 건강 때문인데 결국 「소노다」외상은 9시20분에 불편한 몸으로 회담장에 입장.
회담이 늦게 시작된데다 60억달러의 안보경협 문제가 공식 거론됐기 때문에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회의가 1시간정도 늦어지자 보도진들은 모두 회의장주변에서 회담 귀추를 주목했고 한 관계자는 『이 회담이 이번 각료회의의 성패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 이라며 『회담이 늦어지는 것으로 미루어 결과가 비관시 된다』고 분석.
외상회담은 결국 60억달러의 안보경협문제를 놓고 이견이 전혀 조정되지 않은 원점의 상태에서 끝났는데 한 참석자는 『겉으로는 부드러운 분위기였으나 일본측이 계속 자기네 입장만 고집,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
일본측은 그러나 회담이 끝난 뒤 경제협력확대의 필요성은 인정, 앞으로 경제협력을 위한 혐의를 계속키로 했다고 「기우찌」(목내)외무성아주국장이 일본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브리핑했고 우리측은 『안보경협문제에 여전한 거리를 보였다』는 한마디로 브리핑을 대신해 대조적이었다.

<언어유희 극치 보여>
미묘한 외교교섭에는 항상 말의 유희가 따르게 마련이다. 「소노다」외상이 이번 각료회담에서 행한 갖가지 발언은 그 극치를 보는 느낌.
『지금의 한일관계는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으며 한일관계는 앞으로 독불 군데도 나무랄데 없는 긍정적 평가와 전향적 자세를 보여줬다.
그러나 「소노다」외상은 계속해서 『한반도에 극심한 긴장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한 뒤 『한국의 방위노력과 주한미군주둔이 한반도 세력균형유지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음을 평가한다』고 주석을 달았는데 이는 얼핏 한국의 안보역할을 인정하는 방안처럼 들리지만 사질은 북한의 무력도발위험이 한반도에 존재치 않는다는 종래의 일본측 관념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의도.
뿐만아니라 「소노다」외상은 전체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국방비를 대신하는 원조는 불가능하다 △일본의 ODA원조의 양적확대에는 한도가 있다 △한국에 대한경협은 사회개발위주로 실무자 레벨의 차근한 협의를 할 생각 등 지금까지의 일본측 입장을 되풀이.
그러고 나서 한국측의 격렬한 반발을 감안했음인지 『하지만 양국간의 특별한 관계와 한국이 당면한 곤란을 고려하고 양국의 평화와 번영이 곧 동양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한다는 차원에서 양국의 경협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토를 달아 파국을 면하기 위한 길을 열어놓았다.
「소노다」외상은 특히 이 같은 기조연설내용을 일본기자단에 브리핑하면서 수정된 마지막 경협 확대 시사대목은 일부러 빼 일본측 취재진의 반발을 사는 등 2중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 일본기자는 『브리핑내용만 물으면 한일양국은 이틀간의 회담에서 양국의 관계개선을 위해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느낌이지만 다른 취재로는 한일 안보켱협의 확대는 이미 기정사실이며 국내 여론의 수렴과정만을 남겨놓은 상황인 것 같다』고 일본의 외교스타일을 비관.

<판문점시찰>
일본측 각료들은 10일하오4시 3대의 헬리콥터에 분승, 허장관과 최대사의 안내로 판문점을 시찰했다.
일본측 각료들의 반정도는 전에 판문점을 가본 적이 있어 당초에는 2명만이 시찰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마에다」대사가 『그러면 곤란하다』고 전윈 참가를 건의했다는 후문.
일본측 각료들의 판문점방문은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일본의 오랜 「외면」이 실장을 접하고 현실인식의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뜻에서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풀이했다. 실제로 판문점에 온 일본측 각료들은 서울과 불과 30분거리 지척에 한반도 긴장의 실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눈치였다.
비행23분만인 4시27분, 판문점 남북공동경비구역 안 유엔군측 전진기지에 도착한 일본각료들은 대기중인 유엔군 사령부의 버스에 갈아타고 유엔군 전진기지 지원단장 「쉴즈」중령의 안내로 판문점으로 향했다.
이들은 『중립국 휴전 감시단은 몇 개국이냐』 『최근에는 언제 회의가 있었느냐』고 「쉴즈」중령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쉴즈」중령은 『SR-71기 사건을 따지기 위해 지난 2일 열렸던 회의가 가장 최근 회의』라고 설명.
일본각료들은 회의장안에서 기념촬영도 했는데 이들이 촬영을 하는 동안 급히 달려온 북괴경비병 2명이 창문에 붙어서 일본각료들을 주시했고, 북괴감시병이 늘어나자 각료들은 신경이 쓰이는 듯 『우리쪽을 보고 있다』 『저쪽에도 있는데…』하고 자기들끼리 수근대는 모습도 보였다.
각료들은 「쉴즈」중령으로부터 북괴군캠프의 위치와 8·18도끼만행 이후 남북관계자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 미군병사가 도끼로 타살된 미류나무현장을 돌아보았다.
「소노다」외상은 동행한 일본기자가 방문소감을 묻자 『잠시 동안이었지만 직접 보고 설명을 들으니 긴장상태는 완화된 것 같지 않으나 유엔군과 한국군이 노력하고 있어 안정을 느낀다』고 「긴장」은 인정하면서도 한국군과 미군의 노력으로 안정이 되어있다던 회담 기조연설의 톤을 되풀이.
「소노다」외상의 이 같은 답변은 『주한미군주둔으로 북의 남침위협이 없어 한반도가 안정된 상태』라는 일본의 대한 인식 자세를 바꾸지 않으려는 「강변」이라고 한 외교소식통은 풀이.

<노외무주최 만찬>
노장관이 10일 저녁 영남동공관에서 베푼 만찬에는 「소노다」외상이 건강을 이유로 불참.
『배탈이 났다』 『아무 이상이 없다』등 내한 때부터 설왕설래하던 「소노다」외상의 건강은 이날 저녁 「마에다」대사가 『「소노다」외상은 몸이 불편해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정중하게 사유를 설명해 결국 외교결례를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음을 확인한 셈이 됐다.
약 2시간에 걸친 만찬을 끝내기 전 노장관은 「고오모또」(하본민부) 대신과 「시오까와」(원천정오낭) 대신은 이번에 처음 만나지만 오랜 지기를 대한 느낌』이라고 환영 만찬사를 했다.
일본측 만찬사는 「소노다」외상의 불참으로 자민당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고오모또」경제기획청장관이 대신.
「소노다」외상의 건강에 대해 측근 비서관은 『기내식에 체한 것 같다』면서 「소노다」외상이 몸이 아프면서도 『판문점엔 빠질 수 없다』며 고통을 참고 다녀봤고 11일의 전두환대통령의 오찬에 못 가게 되면 큰일이라고 주사를 맞아가며 컨디션조절에 애쓰고 있다고 전언.

<저녁엔 얼굴만 보여>
공동성명을 위한 양국 실무진간의 교섭은 10일하오3시 1차 접촉을 시발로 초저녁과 심야 l2시부터 3시까지 마라톤 접촉을 벌였으나 핵심에 접근치 못한 채 언론만을 되풀이.
그러다 11일상오 외상회담에서 안보경협문제가 합의를 보지 못함에 따라 공동성명작성을 위한 양측 실무교섭도 자동결렬.
한 소식통은 각료회담 공동성명의 핵이 「안보경협의 반영」이었으나 일본측이 끝내 안보경협 조항의 삽입을 반대했다고 전언.
이 소식통은 우리측도 이러한 일본의 태도에 분개해 알맹이 없는 공동성명은 구태여 요식 행위로 내놓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신부총리 오찬>
이번 회담의 고문자격인 신병현부총리는 10일 「고오모또」경제기획청장관 일행을 롯데호텔로 초청, 오찬을 나누면서 양국경제 전반에 걸친 고담준논을 교환. 양측 모두 기획이주업무여서 그런지 자연히 세계경제· 한일경제현황이 주로 화제가 되었는데 정작 알맹이가 되는 경협문제는 우리측이 4개항의 원칙적 방향만 제시하는 신중한 탐색전을 폈다. 이번이 세번째의 방한인 「고오모또」장관은 자민당 내 실력자여서 이쪽에서도 일본각내 서열에 구애되지 않고 정중히 예우. 이날 오찬에는 외무성과 주한대사관간부 3명이 특별 배석했다.
서석준상공부장관과 「다나까」(전중륙조)통산상은 공식개별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12시30분부터 1시간3O분동안 점심 겸 칵테일을 들면서 워밍업.
호텔신라에서 롯데호텔36층 벨뷰룸으로 자리를 옮기자 두 장관은 본회장의 딱딱한 분위기를 벗어나서인지 부드럽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이어 옆방으로 옮겨 개별회담을 가졌는데 서장관이 대일 요망사항을 설명한 다음 「다나까」통산상이 답변형식으로 진행, 소요시간은 1시간5분.

<검토한다며 사족도>
「가메오까」농림수산상은 고농수산부장관과의 개별회담에 앞서 한국이 지난해 극심한 냉해피해를 보고 올해도 태풍으로 농사피해를 입은데 대해 위로의 말을 전달.
그러나 그는 10일 화성군 새마을 시찰 때 길가의 논을 보니 올해 작황이 대단히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회담에서 미과 등 농산물의 관세인하와 수산물수입제한완화를 우리측이 요구하자 일본측은 일단 『성의 있게 검토하겠다』고 답변했으나 다시 『일본의 영세업자와 어민의 생계에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사족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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