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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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대국회에 들어 국회도서관을 찾는 의원들이 부쩍 늘었다. 5월 이후 연 1천여명의 의원이 의원열람실을 찾았고 도서대출도 3천권 이상이나 돼 과거보다 10배 이상의 이용률을 보였다. 교수·전문가들과의 모임도 갖고 각 당사의 입구에는 세미나 개최를 알리는 벽보가 연일 나붙고 있다. 「공부하는 의원」-. 과거보다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활발한 정책논의에 비하면 그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106회, 107회 두차례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안건은 고작 27. 그중 법률안은 의원발의가 4건 중 2건, 정부제출 안건이 11건 중 5건이 처리 된데 불과하다. 물론 이 결과만으로 11대 국회에 어떤 평점을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
의원발의 법률안은 모두 4건. 10대의 5건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지만 9대 때 1백54건, 한 회기 평균 10건에 비하면 만족할만한 숫자는 못된다.
의원발의법률안 중 민정당이 공약으로 내건 병역법 중 개정 법률안 등 관계법 2건은 신속히 처리됐으나 민한당이 낸 국회법 개정안은 제안설명도 듣지 못한 채 계류중이다.
이밖에 구정공휴일 지정을 요구한 국민당의 건의안 1건이 계류중이다.
의원들이 앞으로 얼마만큼 독자적인 입법활동을 벌이고 결실을 맺을지는 알 수 없다.
민정당 의원들이 당장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법률안은 거의 없다. 정부가 제출할 법안의 사전심의를 통해 의견을 반영하는 정도. 특히 입법회의에서 통과된 법률은 개정 않는다는 당의 불문율이 의원들의 행동변경을 제약하고 있다.
그대신 민정당의원들은 장기적인 정책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전국구의원들의 정책과제는9월초로 일단 마감됐고 정책연구소가 선정한 중장기 대책 연구쪽에 개별 또는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산업기술혁신」을 담당한 이상희·최상업·최낙철·안교덕의원은 KAIST(한국기술연구원)의 전문가들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고, 「국토이용계획」을 맡은 황설·허청일·김기철의원은 8월말 포항·울산·진해·진주 등 공업단지와 개발지역을 1차 시찰.
황병준의원 등은 「식량자급」 및 농산물유통과정 개선 연구를 위해 강남에 있는 농산물 유통시장을 둘러보고 지방의 영농가들과 직접 면담, 실태를 파악중이다.
「서울과 지방의 문화격차 해소방안」을 과제로 자청한 이낙훈의원은 부산·대구에 내려가 문화시설을 둘러보고 연극인 등 예술인을 면담했는데 『문화행사를 할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다』고 중간보고를 했다.
김춘수의원은 30여년 교단생활의 경험과 동료 교수, 수천명의 제자들이 겪는 고충을 엮어 「교원처우개선방안」을 마무리지었다. 이밖에 박원탁·김정호·오세응의원이 「의원외교원칙」, 지갑종·유근환·이우재·하순봉·정원민의원이 「태평양시대와 한국의 역할」, 손춘호·김집·이헌기의원 「해외이주기본방향」등을 공동연구하고 김현자 이윤자 이영희 김행자의원 등 전여성의원이 「여성지위향상방안」연구에 착수했다.
이 공동 과제 중 「고급여성인력활용」부문을 담당한 이영희의원은 신문기사·연감 등을 보며 기초자료를 수집 중 인데 필요하다면 공청회도 열겠다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민정당의원들은 집권당의 이점을 살려 관계 부처와 산하연구기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고 공동연구에 참여한 재력 있는 의원들은 기백만원의 용역비를 자비로 들여 전문가·교수들을 활용하고 있다.
또 소속 상임위별로 열리는 분과위에는 관련된 단체·협회 등의 건의·진정이 줄을 잇는다. 『야당이 과거 이렇게 공부 한 적이 있느냐』고 할 만큼 민한당의원들의 정책연구도 활성화되고 있다. 정치정당에서 정책정당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공정적인 모습의 일단이다.
6월말부터 ▲언론기본법 ▲교육 ▲환경오염 ▲행정개혁 ▲사법개혁 ▲세제 ▲농업정책 등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고 앞으로도 이 세미나는 계속될 전망.
당의 통제가 비교적 약한 민한당의원들은 당정정책심의위의 정책세미나와는 별도로 각개 약진식으로 정책개발을 하고 있다.
황산성의원은 가족법의 전면개정을 목표로 각급 여성단체대표들과 꾸준히 접촉중인데 광화문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도 걸어 잠그고 전력투구. 변호사출신의 고영구의원은 입법회의에서 통과된 소송관계특례법개정안마련으로 바쁘고 부가세의 문제점을 파헤치겠다는 김문원·이영준·김태직의원은 서대문교도소로 세무서원 피살사건의 범인들을 찾아가 세금책정의 문제점을 듣기도 했다.
극비리(?)에 경제관계입법을 추진중인 홍사덕의원은 법안이름조차 새나가면 효과가 반감된다고 비서에게도 안 알리고 혼자서 관계자료를 수집 중. 보사위소속 심혜섭의원은 당과 사전 협의없이 노동관계법개정안을 만들어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번 정기국회에 민한당의원들이 제출하겠다고 장담하고있는 법률개정안은 ▲정치관계법=정당법·선관위법·정치자금법·지방자치법 등 7건 ▲경제관계=소득세법·부가세법 등 16건 ▲사회관계=언론기본법·노동관계법 등 6건과 형소법·변호사법 등 30여건. 민한당의원들이 과연 이 법을 모두 제출할지는 국회의 정치적 기류와도 관련이 있다.
인력이 달리는 국민당의원들은 본격적인 정책개발보다는 그때 그때의 시사적 문제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용병술로 한몫을 보고 있다. 7월말부터 ▲교육안 반대 ▲행정개혁 ▲세제제개혁 ▲국회법개정 등 문제점을 적기에 지적했다. 구공화당시절에 단련된 베테랑들이 소수정예로 『치고 달아나는』전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결국 인원과 재정부족으로 깊이 있는 정책개발에 까지는 이르지 못하고있다.
야당에도 정부정책을 알려준다는 방침에 따라 월례 경제동향보고, 무역확대회의 등에 민한·국민당의 사무총장·정책위의장·대변인등이 계속 참여하고 있지만 타당의원들에 대한정부의 협조는 아직 표피적인데 그치고 있다. 민한당 의원들의 정책질문서에 대한 정부 답변은 피상적이었고 국민당의 행정개혁 세미나 참석 요구는 정부측이 기피했다.
국회의원과 정당들의 정책개발→입법활동은 아직 발돋움하는 단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사회발전에 따른 전문성요구에 대처 할 만큼 의원들의 수준이 미치지 못하고 전문가들을 포용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반년 남짓한 기간의 실적만으로는 평가하기가 이르다는 점에서 입법에 대한 11대 의원들의 영향력 또는 기여도는 아직 미지수인 셈이다. <김형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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