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장 안경환·이상돈 카드 무산 … 퇴진 몰리는 박영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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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오른쪽)이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석현 국회부의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형수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물밑에서 추진해 왔던 ‘비상대책위원장 외부인사 영입’ 계획이 무산됐다. 박 위원장으로부터 공동 비대위원장 제의를 받은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12일 동시에 거절할 뜻을 밝히면서다.

 오전까지만 해도 박 위원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당 혁신과 확장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외부인사 영입을 진행해 왔다”며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공동위원장 체제가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 측근들은 “두 사람이 모두 비대위원장 직을 수락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날 오후 외부인사 영입 계획이 최종 무산으로 가닥이 잡혔다. 박수현 대변인은 “두 교수님을 공동 비대위원장으로 모시기로 한 것은 두 분의 고사로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안 교수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새로운 정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전날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활동한 이 교수의 비대위원장 내정 사실이 알려져 당내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박지원 의원이 ‘안경환 카드’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격적으로 공개해 버렸다. 진보 성향의 공동 비대위원장 카드를 제시함으로써 갈등을 봉합하겠다는 취지였을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박 위원장을 더욱 코너로 몰았다.

 이 교수는 이날 “당내 의견이 모아지면 수락하겠다는 거였는데, 전제 조건의 충족이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고사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며 “(비대위원장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어찌 보면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안 교수도 기자들과 만나 “나는 (정치를) 못 한다는 입장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며 “역량의 한계를 알았기 때문에 안 하겠다”고 말했다. 공동위원장으로 내정됐던 이 교수를 박 위원장에게 자신이 추천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안 교수는 “합리적인 분이고, 아이디어와 순수성이 있는 사람이라 당이 외연을 넓히려면 그런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이 교수 영입이 무산되자 안 교수도 마음을 접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박 위원장은 이날 오후 여의도에서 문희상·정세균·김한길·박지원·문재인 의원 등 중진 의원들과 긴급 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공동 비대위원장 영입은 어렵게 됐으니 비대위 구성 문제는 나중에 논의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박 위원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선 “(박 위원장이 물러나면) 당이 더 위기에 처하게 되고, 세월호특별법 협상이 표류할 수 있으므로 거취 문제는 언급을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들은 “앞으로 세월호특별법과 민생 현안에 집중한다”는 향후 당 운영 방향도 정했다.

 하지만 외부인사 영입카드가 불발로 끝나면서 박 위원장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이날 고(故) 김근태 고문 계보인 민주평화국민연대(최규성·우원식 의원 등 10명), 혁신모임(오영식·이원욱 의원 등 5명), 3선 의원(전병헌·이상민 의원 등 11명) 등이 계파별로 회동을 한 뒤 “박 위원장은 비대위원장뿐 아니라 원내대표 직에서도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당초 박 위원장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영입에 공을 들여왔다. 문재인 의원에게 조 교수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문 의원의 요청을 받은 조 교수는 한때 수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가 학교 강의 문제로 마음을 돌렸다. 이후 박 위원장은 ‘진보+개혁보수’의 결합 전략을 추진하려 했으나 오히려 분란만 키운 셈이 됐다.

글=이윤석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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