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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글루텐이 만병의 근원이라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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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이희상
한국제분협회 회장

밀가루만큼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 끼친 영향이 큰 식품도 없을 것이다. 일년 내내, 세끼니 모두 먹어도 질리지 않는 우리 밥이요, 주식이 되었다.

 밀가루는 쌀과 달리 쫄깃함과 탱탱한 식감을 자랑하는데, 그 비밀은 ‘글루텐(gluten)’이라는 성분에서 찾을 수 있다. 글루텐은 밀가루에 들어있는 단백질로 글리아딘(gliadin)과 글루테닌(glutenin)이 결합해 만들어지는데, 탄성이 좋은 글루테닌과 점착성이 강한 글리아딘은 물과 섞이면 쫄깃한 식감이 더해지는 오묘한 특성이 있다.

 이처럼 밀가루 음식을 만드는데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글루텐이 최근 장내 염증을 일으키고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 밀가루의 글루텐이 일부 특이 체질 사람들에게 설사와 영양장애, 장 염증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다. 이를 셀리악병(Celiac disease)이라 한다. 미국 한 의과대학의 셀리악 연구센터에 따르면 셀리악병은 밀을 주식으로 하는 미국에서조차 발병률이 인구의 1% 미만일 정도로 희귀한 질환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랄 수 있는 99%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다는 의미다. 더구나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는 셀리악병 질환자 통계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극히 드문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마치 모든 사람이 셀리악병에 걸리고,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심지어 ‘글루텐 프리 제품’을 출시하는 등의 과도한 마케팅을 펼쳐 제분업계 관계자로써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처럼 밀가루의 글루텐을 없앤다면 능사일까. 의료계에 따르면 밀가루의 단백질 덩어리인 글루텐이 제거되면 상대적으로 높아진 탄수화물 함량과 다량의 당분, 나트륨이 오히려 비만과 대사 증후군 발병 가능성이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피자·자장면·파스타 등 밀가루 식품에 들어가는 소금과 설탕 등 다양한 식품 첨가물의 양을 줄이고 천연 식재료를 대신 사용하는 것이 명확한 해답이 될 수 있다.

 과거에도 밀가루는 제조과정에서 표백제·방부제를 사용한다는 전혀 사실이 아닌 왜곡된 정보가 확산되어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러한 오해는 풀렸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해야만 했다.

 밀가루는 1970년대 쌀이 부족하던 시대에 정부가 혼분식을 장려한 이후 그리고 국민소득 증가에 따른 식문화의 다양화 영향으로 소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우리국민의 제 2의 주식이 되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밀을 주식으로 하고 있고, 중국의 경우 5000여 년 전부터 밀가루를 먹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식량이 귀한 시절엔 밀가루가 진가루로 불리며 고급 식재료로 쓰였다.

 이처럼 밀은 인류의 음식문화사와 함께해 온 소중한 식재료임에도 최근 일부에서 상업적 이익을 위해 밀가루나 밀가루 음식을 건강의 적으로 매도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이희상 한국제분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