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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못보는 고교생 35명이 한라산 정상을 오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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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발 1천9백50m 남한 최고봉 한라산-.
변화무쌍한 일기변화, 험준한 등반코스로 정상인들도 힘겨운 한라산 정상에 앞못보는 어린 학생들이 도전한다.
서울 맹학교(교장 심경섭) 고교반 2학년생 35명이 대장정의 날 10월12일을 앞두고 이들은 초가을 뙤약볕 아래서 손끝 발끝의 신경을 모아 등반훈련에 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이 한라산등반을 계획한 것은 빚과 형상을 잃은 이들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는 지혜를 기르고 부족한 신체적 조건을 정신력으로 보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다.
암흑 속에서 암벽과 계곡·숲 속을 헤쳐야 하는 이들의 훈련방법은 특이하다. 눈 대신 청각과 후각·촉각을 동원해야하고 빈틈없는 협동정신이 몸에 배야 한다.
3∼4명씩 그룹을 지어 그룹마다 1∼2m앞을 볼 수 있는 약시 학생이 리더가 된다.
제1단계는 평지 도보훈련. 리더의 구령에 맞추어 『하나, 둘』하며 발을 맞춰 일렬행진을 한다. 서로서로 손을 잡고 걷기 때문에 호흡이 맞지 않아 한사람이 넘어지면 그룹전체가 쓰러지게 된다.
다음은 돌밭통과훈련. 이때는 지팡이를 사용한다. 지금까지 평지만을 걷던 학생들은 돌무더기에서 지팡이를 더듬이처럼 돌려 돌의 크기·모양을 가늠하고 쓰임새를 익히고 있다.
제3단계는 경사가 가파르고 예리한 돌부리가 많은 해발1천7백m지점 통과훈련. 여기서부터는 그룹행진이 어려워 전원이 엎드려 두손·두발을 눈으로 기어서 올라가야 한다.
등반보다 하산 길에 골절 등 사고가 많기 때문에 하산은 전 코스를 기어서 내려온다.
학생들의 온몸은 땀으로 멱을 감은 듯하고 벌써 손바닥과 무릎이 터지고 갈라져 굳은살이 배기기 시작했다.
이번 등반계획을 세운 2학년 담임 이길재 교사(41)는 2년전 첫 등반을 경험삼아 전원 낙오자 없는 성공을 기대한다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동류의식이 생기고 삶의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는데 뜻이 있다』고 했다.
2년전 첫 시도 때는 34명이 등정, 29명이 정상에 오르는 성공을 했다. 해발1천3백m지점의 영실에서 출발, 백록담을 밟고 하산하는데 걸린 시간은 11시간. 정상인의 두배 가까운 시간을 소요했다. 이 교사는 이번엔 이 시간을 더욱 단축하기 위해 대학생 등반전문가 3명을 동행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등반에 드는 돈은 1인당 6만원. 지난 l년 동안 각자 적금에 가입, 푼돈을 모아 뜻있는 일에 참여한 것이다.<한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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