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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년 복지 「자조회」의 이모저모|전과 합계 14범의 1등 사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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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권력에 약한 단면 보여>
전과자들의 사기극에 지도층 인사들까지 놀아난 한국노년복지「자조회」사건은 권력에 굽실거리고 명분에 약한 우리 사회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한 단면이었다.
「현선달」로 불리는 현재섭씨 등 일당은 저명인사들을 상대로 한 것만으로는 부족했음인지 사기극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자기들끼리 서로를 속이고, 거듭 속이는 사기전문가(?)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법인인가 신청하라">
현등이 보사부와 접촉을 가진 것은 지난달 중순.
전우환씨를 앞장세우고 현등 간부들이 24일 천명기 보사부장관을 면담했다.
면담에 앞서 천 장관에게는 평소 안면이 있는 국회 K모 의원으로부터『노인복지사업을 대대적으로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취지가 좋은 것 같으니 한번 만나 보라』는 전화연락이 있었다고.
K의원은 현등을 정계요인인 L모씨를 통해 만나 천 장관에게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며칠 후인 24일 현재섭·전상봉씨 등 간부들이 전우환씨와 함께 보사부를 찾아갔다.
노인복지 주무국인 사회국장을 찾아 거창한 사업계획을 담은 호화 팸플릿을 내놓고 설명한 후 사단법인설립인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은 장관면담도 요청, 천 장관을 만났으나『정식으로 법인인가 신청을 내면 검토해 보겠다』고 돌려보냈다는 것.

<대성황이룬 창립총회>
8월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립총회는 대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 참석자의 얘기.
회의실 단장에는 정계요인 L모씨가 보낸 화환과「축 발전」이라 쓴 그의 휘호가 걸려 있었고, 3백∼4백명의 참석자들이 회의장을 꽉 메웠다.
주최측에서는 이날 총회에「귀한 분」이 오신다고 미리 소문을 냈다는 얘기도 있다. 어떤 참석자는「귀한 분」이 오신다는 바람에 나갔으나 사회자가『오시기로 예정이 되어있었으나 갑자기 일이 생겨 못 오시게됐다』고 양해를 구하는 것을 보고 거짓이었음을 알았다고. 참석자중에는 전 공화당의원이었던 L모씨의 얼굴도 눈에 띄었으며 K씨는 발언도 많이 했다.

<돈 우려낸 후엔 손떼어>
주범 현씨가 사회 각계인사들을 세치 혀끝으로 농락하고 있을 때 자조회 총무위원장 안경태씨는 시치미를 떼고 현 의장을 등쳤다.
지난 6월 초순 전·현직 정부고위층과 정치지도자의 휘호를 받아오겠다며『교제비가 필요하다』는 구실로 안씨는 현씨로부터 6차례에 걸쳐 2백90만원을 긁어냈다. 안씨가 돈만 받고 휘호를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본 전과7법의 전상봉씨는 『그 휘호 내가 받아다 주겠노라』며 안씨로 하여금 서울상도3동 자기 집에 74만여원 어치의 커튼 시설을 하게 했다. 전씨 역시 사기였다.
이 밖에도 주범 현씨는 지난 달『사장을 시켜주겠다』는 사기범 최진기씨(52·8월초 구속)의 꾐에 걸려들어 3천4백만원을 날린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최씨는 자본가들만을 골라 『사장을 시켜주겠다』며 거액을 투자케 한 다음 회사이름으로 거짓 약속 어음을 발행하는 수법으로 실속을 차린 뒤 회사가 망하면 손을 빼고 다시 일당끼리 다른 회사를 세우는 상습사기꾼. O건설부사장이던 최씨는 자본주 이모씨를 끌어들여 돈을 모두 긁어낸 다음 손을 떼고 지난달 3일「노산종합건설주식회사」라는 새로운 회사를 세우면서 현씨를 사장으로 영입했다.
현씨는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전상봉씨를 이 회사 8명의 이사 가운데 한명으로 앉혀야 한다고 고집, 이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회사설립 직후 최씨 일당 3명이 경찰에 걸려들었고, 이번에 현씨와 전씨가 구속돼 현씨가 투자한 3천4백만원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것.
사태를 간파한 현씨가 지난달 중순 즉각 반격을 가해 이사 가운데 한사람인 엉뚱한 피해자 조영찬씨에게 자조회 단지공사를 맡게 해준다고 속여 2천5백만원을 거뜬히 우려냈다.
그야말로 사기꾼이 피해자이고 피의자가 사기꾼인「사기꾼들의 행진」이었다.

<"총무이사 시켜주겠다">
현씨가 만든 자조회의 정관에는 묘한 대목이 눈에 띈다. 회원의 자격을 3등분 한 것.
많은 재산을 기부한 사람은 특별회원이 되고 회비만을 납부한 사람은 정회원이 되며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보건사회부장관 및 지방장관이 추천한 사람은 준회원에 머물도록 돼있다.
장차 자조회 총무이사를 시켜주겠다는 꾐에 넘어가 1천만원을 선뜻 내 놓은 최수백씨(서울봉천동338)나 서무이사직을 다짐받고 역시 1천만원을 털어놓은 노관섭써(대구시 산격동1276)등이 특별회원으로 현씨로부터 장차 아파트에 무상 입주시켜준다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다.

<현은 아파트 전세 생활>
자조회 창립총회 초청장을 보면 현씨는 철학 박사로 돼있으나 가짜로 밝혀졌다.
K대 법과를 졸업한 뒤 55년 서울시사회과장을 역임했고 4·19후 서울성북구에서 무소속으로 민의원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 이래 사기전문의 길을 걸어왔다고 경찰은 밝혔다.
현씨는 서울 잠실시영아파트 한 채를 5백만원에 전세들어 살고있다.
전상근씨는 육군중령으로 예편한 이래 부산의 H관광호텔 전무와 D제약회사 이사를 역임.
공문서위조와 동행사죄로 복역한 경력을 갖고 있다.
또 안경태씨는 D대 농공학과2년을 중퇴한 후 보험회사사원·전자제품판매상·변호사사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으며 변호사법위반등 전과 4범.
이 밖에 전상봉씨도 육군대위로 예편한 뒤 M대행정학과를 졸업, B양조회사 서울사업소장과 서울시 대행 수산시장장 비서실장을 역임했으며 사기·폭력 등 7범.【오홍근·문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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