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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외상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일본조야의 공기를 보면 20일 개막되는 한일외상회담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최근들어 일본정치인들, 고위관리들, 중견언론인들의 방한 러시가 두드러지는 것은 일본측도 나름대로 외상회담에서 정기각료회의(9월), 정상회담(내년1월이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한일교섭에 단단한 채비를 하고 임한다는 증거도 된다.
그러나 일본신문들의 논조와 고위관리들의 발언에 반영된 일본의 자세를 보면 한일교섭에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되어있는 일본의 대한경협 대폭증액의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한국은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위해 6백억 달러에 가까운 자금을 필요로 하는데 그중 약 백억 달러를 일본의 정부차관(60억)과 상업차관(40억)으로 조달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받고싶어하는 경제협력규모를 공식으로 제시하기도 전에 일본조야는 연일 비명을 지르고 있어 한일교섭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스즈끼」(영목선행)수상은 오타와 선진국 수상회담과 미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을 위해서 군사적 역할을 못 맡는대신 경제협력으로 역할을 분담하겠다고 분명히 약속했다.
동북아시아 안보의 바탕은 한반도의 안정과 현장유지다. 일본의 81년도 방위백서는 10년만에 처음으로 북괴남침가능성을 인정했다.
「스즈끼」수상의 약속과 방위백서에 나타난 한반도 정세의 평가를 묶어서 생각하면 일본의 대한경제협력이 대폭 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일본은 북괴남침 위협인정으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인식에서 한미 두나라와 견해차를 기껏 좁혀놓고는 가장 중요한 실천문체에 가서는 이핑계 저핑계를 대고있다.
일본이 내세우는 주장은 정부차관(ODA)은 1인당 GNP 1천달러이하의 후진국의 민생안정을 대상으로 하고 1천달러 이상의 나라에는 상업차관 위주의 협력을 하는 것을 정책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같은 중진국에 연평균 12억달러의 공공차관을 5년간 제공하는 것은 일본의 대외원조정책 자체를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결과가 되고 저개발국에 돌아갈 몫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일본은 주장한다.
이런 논리는 안보측면을 전적으로 도외시할때만 피상적으로나마 그럴싸하게 들릴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일본은 도대체 어떤 형식의 경제협력으로 이 지역의 안보에 기여하겠다는 것인가.
한일국교 정상화 후의 일본의 대한경제협력의 구조를 보면 재정대상업 차관의 비율이 66년에 40대 60이던 것이 70년에는 22대 78로 후퇴하고, 78년 정기각료회의는 경제협력을 정부베이스에서 민간베이스로 옮긴다는 것을 공동성명에까지 명문화했다.
차관조건에 있어서 이자가 정부차관이 연간 3내지 4%인데 비해 상업차관은 20%나 된다.
한국이 정부차관 우위를 요구하는 것도 경제적으로만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다.
거기다 한국이 일본방위의 방파제임을 고려하면 일본은 개인소득 1천달러를 기준으로 중·후진국을 구별하는 차관정책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겠다고 우길 처지가 아니지 않는가.
60억달러라는 액수에 일본은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지만 80년의 일본의 GNP가 국교가 정상화된 65년의 3배남짓, 외환보유고가 13배이상늘고 한국의 대일무역적자가 2백억달러라는 몇 가지 기본적인 통계만 보아도 60억달러 요청에 대한 일본의 경악은 이기주의적인 「계산된 엄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소위 총합안보론을 내세워 후진국 원조에 열의를 쏟는 것처럼 생색을 내지만 그것은 자원확보를 위한 후진국대책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안보는 한국과 미국이 맡고 일본은「안보요금」의 지불 없이 계속 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겠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외상회담은 「길고 힘든 교섭」의 시작이다. 한국은 감정의 노출을 억제하고 인내를 가지고 일본에 한국의 입장을 납득시켜야 한다.
일본은 개인소득 1천달러 상하의 형식적인 구분, 경제와 안보의 철저한 분리를 고집하는 구태를 벗고 한일간의 명실상부한 공존·공영관계의 실현을 위해 대승적인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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