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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북녘 고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월남한지 30년-. 서울로 피난 온 지도 강산이 세번 변하고도 남으니…. 그립다 못해 목숨 걸고 맨발로라도 뛰어가고 싶은 내 고향 함흥이다.
지난 7월18일 쌍용 빌딩에서 우리 함남고여 전체 동창회가 있었다. 해마다 봄이면 총회가 있었으나 30년만에 처음으로 동문지를 발간하고 모두가 모였다.
옛 은사, 선배와 후배들 모두가 그립고 반가운 얼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당시 경도여대를 졸업한 후 첫 부임지로 우리 학교에 오셨던 이춘숙 교수님의 즐겁고 자부심에 꽉 잤던 지난날의 추억담에 우리들은 옛 여고 시절로 돌아간 듯 즐겁게 웃고 또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한권씩 받아든 동문지 「송원」은 다듬어진 글들은 아니지만 스승과 선배, 후배들이 지난날의 추억, 인생 체험 등을 폭넓게 다룬 글들을 모은 소중한 것이었다.
지금은 대학 교수이시나 그 시절 우리 선생님이셨던 모기윤·이한빈·이춘숙·이정숙 선생님들의 좋은 글은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4회 졸업생 언니의 『고난을 통한 감사』를 읽고는 자꾸 눈물이 흘렸다.
미국 아들집에 갔다가 우연히 불치병인 「암」 진단을 받은 언니가 절망을 이기며 더욱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반드시 병을 이겨내겠다는 강한 투지와 신념으로 살아간다는 글은 우리에게 삶의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동창 모두 마음을 합해 언니의 회복을 하느님께 기도 드리고 있다.
또 5회 언니 한 분은 함흥 지방 사투리를 열거해 놓아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향 말을 새로이 뇌까려 보니 얼마나 우습던지 온 가족이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이렇듯 고향 생각이 간절한데 어떻게 하면 고향길이 트일 것인가. 행여나 하고 기다린지 30년. 부모·형제를 두고 온 가야할 고향 길은 열리지 않는데 해외 여행 자유화라니 새삼 서글프고 짜증이 난다.
우리 나라의 경제 발전으로 국민 소득도 높아져 외국 어디서라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대학생들의 해외 연수는 일찍부터 선진국의 학문과 기술을 익히고 견문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그러나 벌써부터 부자 집은 자녀를 해외에 유학 보낸다고 떠들썩하고, 가난한 집 부모나 자녀들은 탄식과 절망이 크니 걱정이다.
또 정부나 국민이 한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남북 통일의 염원일 것이다. 먼 외국보다 판문점에만 가면 눈앞에 환히 내려다보이는 우리 고향으로 가는 길이 하루속히 트여야할 것 같다. 그렇게 되어 북의 풍부한 지하 자원과 남쪽의 발달된 기술 등이 합쳐져 노력한다면 우리도 어느 나라 못지 않은 경제 강국이 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 길이 열리면 누구든 갈 수 있다. 여권 없이도, 돈 없이도,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이다.
먼 외국은 쉽게 갈 수 있건만 가까운 내나라 북쪽으로의 문은 어찌하여 그토록 열리지 않는가. 치미는 분노 호소할 곳 없어 북녘 하늘에 대고 외쳐본다.
『그 누구 때문이냐?』고. (서울 은평구 역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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