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질 얼마나 건강해졌나|「8·3조치」9돌…그 효과를 결산해 본다|사채의 변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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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3조치(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아홉돌을 맞았다. 72년8월3일 대통령 긴급명령에 의해 단행된 8·3조치는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이를 결산해 본다.
경제혁명 이랄 수 있는 8·3조치의 핵심은 기업을 사채 중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생의 전기를 마련해 보자는 것이었다.
사채의 고리를 단전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혁명적인 방법 선택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조치를 취하면서 정부측은 사채는 다시 기생하기 어려 울 것이고 기업의 재무구조는 건실해지며 금융질서는 정상화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만9년이 지난 지금 경제현실은 정부측의 그러한 기대가 빗나갔음을 말해주고 있다.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사채는 건재하고 기업의 재무구조는 다시 악화됐다.
72년 8·3조치 당시 전국의 사채규모는 3천5백71억원(채무자 신고는 3천4백56억원)으로 국내여신(DC)의 35%, 5개 시중은행 대출금의 56.3%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건당 사채액수는 1억원 이상이 1천8백28억원(5백73건), 5천만원∼1억원이 3백89억원(5백68건), 1백만원 미만은 1만9천5백건 17억원.
9년이 지난 지금 사채규모가 얼마나 될 것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사채를 얻어 자금융통을 하고 있고 명동의 사채시장은 계속 성업중이다.
작년 하반기 통화당국이 추정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채규모는 8천5백여억원인데 실제는 1초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
통화당국의 산출근거는 각종 유동성 지표와 금융자산의 다양화경도, 금융기관 이용관습의 진전도 등을 분석하고 여기에 8·3조치 당시의 사분비율을 감안한 것. 작년 6월 말 현재 통화(M1)를 기준해서 산출하면 6천6백45억원, 총통화(M2)를 기준하면 8천5백65억원, 그리고 민간여신에 대한 비율은 이용해서 추정하면 1조8백17억원에 달한다는 것이 통화당국의 분석.
또한 자금순환표를 분석·추계했을 때는 8천5백39억원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이러한 분석은 어디까지나 추정치이기 때문에 정확도에는 문제가 있다.
8·3조치 때는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상권효력이 상실될 뿐 아니라 처벌마저 받게 되었었기 때문에 거의 실제조사가 가능했었는데 그러한 방법을 다시 쓰지 않는 이상 정확한 파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제규모의 성장과 자금 수요 팽창, 만성적인 기업의 자금난, 제도금융의 자금공급부족 등을 감안하면 사채규모는 커져왔다고 보아 틀림없을 것이다.
통화당국의 추정으로는 사채규모는 ▲76년말 1천9백40억원 ▲77년말 4천5백70억원 ▲78년말 7천2백90억원 ▲내년 말 7천7백50억원으로 증가추세를 나타냈다.
최근에는 기업의 설비투자 부진으로 인한 자금수요감소·실세금리의 어음(CP) 발행 실시 등으로 사채시장은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6월20일부터 시작된 신종어음의 발행은 7월30일까지 40일 동안 1천4백65억원 매출됐고 평균금리는 25.758%. 여기에 몰린 자금은 물론 시중 유동자금이지만 이중에는 사정시장에서 돌아다니던 것도 상당액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세 금리의 CP는 기업측으로 보면 지불이자의 세무처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유용한 방식이 되고 있다.
사채시장의 위축은 금리의 하락에서 증명된다. 최근에는 월 2.5∼3.5%선.
8·3조치 당시와 77∼80년의 3∼5%에 비하면 크게 떨어졌다.
사채시장의 이러한 위축은 구조적인 개선에 의한 것이기보다 시설투자부진에 따른 기업의 자금수요 둔화에 더 큰 요인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기업이 다시 투자활동을 본격화하게 되면 자금수요는 급증하게 되는데 현재의 제도금융이 이를 충족시켜 주기란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사채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1조원 안팎으로 추산되는 사채규모는 그동안의 경제규모팽창에 비하면 8·3조치 때 보다 비율로 보아 줄어든 것이다.
통화당국의 분석으로는 72∼80년 사이 사항규모는 2.5배 증가했지만 전체 금융 및 경제규모에 대한 비율은 3분의1수준으로 하락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사채이자부담률은 8·3조치 당시의 총 기업비용의 3.9%에서 80년에는0.5%정도로 개선된 것으로 보았다.
8·3조치에 의해 신고된 사채는3년 거치 5년 균등상환(소액은 그전에 해결)하도록 해서 작년까지로 완결됐다.
단기자금을 장기저리자금으로 대환 해 준 것도(총액 1천9백85억원) 지난 20일자로 전액 회수됐다.
이로써 사채조정과 특별금융 조치는 사실상 매듭지어졌지만 8·3조치(긴급명령)는 아직도 법률로서의 효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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