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교분석] 박근혜 '일방 외교' VS 아베 '전방위 외교'-더 이상 아베의 러브콜은 없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해 5월 15일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헌법 해석 변경을 공식화했다.

월간중앙일본 외교 역사상 2014년 여름만큼 활발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시기가 있을까? 외교 문외한으로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제1차 세계대전 직후와 미국과 유럽에 밀려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중국으로 치고 나가던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외교활동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1920년대와 1940년대는 수동적 차원에서 이뤄진, 서방에 이끌려가는 외교활동이었다. 아베가 주도하는 21세기 초 일본 외교는 한발 늦은, 수동형 수준의 활동이 아니다. 적극적이고 포괄적이며, 빠르고 장기적 차원의 외교다. 글로벌 관점에서 앞으로 최소한 50년 정도는 시야에 넣은 활동이 2014년 일본 외교의 현주소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중국의 정상과도 만나지 못하는 나라가 어떻게 글로벌 외교를 펼칠 수 있느냐고 반문할 듯하다.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현재 일본과 나쁜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는 딱 두 나라다. 한국과 중국이다. 한국·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는 대신 다른 나라들과의 우호관계는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아베의 방문 외교는 2014년 일본 외교의 하이라이트에 속한다.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이다. 8월 4일 아베는 열흘간의 남미 방문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왔다. 2012년 12월 집권이래 무려 47개국을 방문한다. 일본 역대 수상 가운데 1위인 것은 물론, 현직 세계 정상 가운데에서도 최고 기록일 듯 하다. 5대양 6대주 전부를 돌아다녔다. 축적된 비행기 마일리지로 볼 때 다이아몬드 클래스에 들어가고도 남는다. 지금까지 만난 정상의 경우 100여 명이 넘는다. 국제회의가 열린 나라도 방문했기 때문이다.

집권 20개월 만에 100명이란 말은 한 달에 5명의 정상을 새로 만난다는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행해지는 현장 외교다. 아베의 방문외교 스타일 중 하나지만, 보통 비행기에서 잠을 자고 하루 만에 공식 일정을 해치운다. 따라서 47개국이라 해도 비행기 왕복시간 하루, 현지 활동 하루로 1개국 당 많아도 이틀이 필요할 뿐이다. 말 그대로 비지니스 트립이다.

한 번 갈 때마다 복수(複數)의 나라를 한꺼번에 들리기 때문에 다섯 나라를 동시에 방문한다 해도 많아도 1주일 정도면 된다. 외국 방문은 일본이 쉬는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아베를 맞는 외국정상은 휴일인 토요일, 일요일에 정상회담을 치르기도 한다. 속전속결, 일사불란이다.

동남아의 대변자가 된 아베

아베의 외교행보가 일찍, 빠르게 그리고 글로벌 차원에서 이뤄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중국 견제다. 아베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똑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국제법을 통한 국제질서 준수, 무력이 아닌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두 가지다. 센카쿠(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한 중국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아베가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동남아 대부분의 나라가 맞닥뜨린 상황이기도 하다.

지난 5월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된, 베트남 목선을 중국 군함으로 밀어붙이는 영상이 좋은 예다. 베트남과 중국의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남중국 바다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동남아시아 대부분은 현재 21세기판 황화론(黃禍論)에 불안해 하고 있다. 일본은 그 같은 ‘우군(友軍)’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선진국으로, 전 세계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한국의 판단과 달리 중국은 친구가 거의 없다. 굳이 거론하자면, 한국·파키스탄·캄보디아·아프리카 등이 중국의 친구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대국이란 점에서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영하고 있지만, 중국을 신뢰의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나라는 극소수다. 인권이나 환경 같은 인류보편의 상식과 무관한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인이 가는 곳마다 문제가 생긴다. 돈의 힘으로 막고 있을 뿐,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낸 나라처럼 보인다. 일본은 그 같은 중국의 약점을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한다.

둘째 이유는 일본의 유엔안보리 진출 때문이다. 빠르면 내년부터 국제적 이슈로 다뤄지겠지만, 유엔 개혁 문제가 등장할 것이다. 예산 문제를 비롯한 조직의 체질개선에 주목하겠지만,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개혁은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일본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노리고 있다. 중국이 버티는 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논리다. 유엔안보리 개혁은 일본만 나서는 것이 아니다. 독일·인도·나이지리아·브라질 같은 5대양 6대주의 나라들이 상임이사국 자리를 원하고 있다. 일본만 단독으로 나서는 게 아니라, 이른바 2군의 수장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식이다.

중국이 일본을 상임이사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이 브라질과 나이지리아·파키스탄의 상임위 진입을 막으려는 명분은 극히 약하다. 따로 일본만 떼어내서 상임이사국 반대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사국 후보들이 묵과하지 않는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란 차원에서 공동운명체로 움직인다. 모두 나름대로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 같은 약점과 장점을 하나로 묶어 유엔개혁안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개혁안에 대응할 것이다.

현행 유엔법에 따르면 총회원국의 3분의 2의 찬성이 있을 경우 유엔개혁안이 통과된다. 5개 상임이사국은 총회의 결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극단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본만이 아닌, 상임위 후보 모두에 대한 반대가 된다. 상임이사국 가운데 중국만이 총회의 결정에 불복할 경우, 세계를 상대로 한 반발로 비친다. 복잡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통해 개혁안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일본은 현재 상임위 진입가능성을 6대 4 정도로 보고있다.

아베는 역대 그 어떤 수상보다도 자국의 외무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대부분의 정치인은 국내정치에 올인한다. 아베는 외무성이 요청하고 요구하는 모든 사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직접 몸으로 실행한다. 명분과 의욕이 앞세우며 사진 찍기에 열심인 정치인과는 격이 다르다. 외무성 관료의 의견을 바탕으로 움직인다. 외무성 직원이 일할 맛이 나는 분위기를 아베가 제공하고 있다.

2012년 중국 베이징 주재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반일시위에서는 항일운동을 이끈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등장했다.

아베에게 한일관계는 중일관계의 종속 변수

언제부터인가 한국 언론은 아베를 박 대통령 ‘스토커’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살펴보면, 아베가 스토커 행위를 멈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토커 행위가 극에 달한 것은 지난 3월 헤이그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직전까지다. 오바마의 총연출 아래 아베가 한국말로 인사를 하고, 박대통령이 입술을 깨물었던 그 무대이다. 이후 아베의 러브콜은 점점 사라진다. 최근에는 한국 자체를 언급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거꾸로 한국의 신경을 자극하는 발언을 스가 관방장관을 통해 발표하고 있다. 스가 장관은 일본의 입장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과의 정상회담에 매달리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안 해도 될 말을 신문·방송에 밝힌다. 왜 그럴까?

워싱턴에서 만난 한 일본인 교수는 그 같은 궁금증을 한마디로 답한다. “일단 중국과 먼저 길을 튼 뒤, 그 이후에 한국과 손을 잡는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방침이다. 사실 노력해도 성과도 없고….” 워싱턴의 일본외교관들이 공공연히 입에 올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일관계는 중일관계 정상화 이후’라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외무성 전체를 통틀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중국의 변수로서의 한국’이다. 중국과 좋은 관계에 들어갈 경우 한국은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된다는 논리다.

아베의 스토커 행위가 중단된 것은 중국 변수로서의 한국이란 생각이 퍼져나간 시기다. 실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면 한국이 일본에 손을 뻗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명분도 없고, 박 대통령의 캐릭터로 볼 때 아베와 자리를 함께하기가 어렵다. 아베는 무조건적인 만남을 원하지만, 한국측은 위안부 역사문제, 독도문제를 전제로 한 회담을 요구한다. 접점이 없다.

‘아베 신조 시진핑, 첫 정상회담 조율’. 지난 8월 4일 한국 신문에 일제히 실린 기사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실린 기사를 인용해 보도한 것이다. 오는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때의 중일 정상회담 실현을 위해 양국이 조율에 들어갈 방침이라는 것이다. 기사를 본 한국인들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우선 대부분이 깜짝 놀랐을 듯하다.

일본을 가정한 전쟁준비에 나서라고 독려하던 시진핑이 무슨 생각으로 아베를 만나려 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 중일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일본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두 나라 모두 정상회담을 통해 뭔가를 보여주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중일양국은 서로의 장점과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상대방의 강점이 강하게 와 닿을 경우, 다시 말해 자신의 약점이 노출될 경우 대화에 매달린다. 외교다. 현재 양국은 서로의 장점과 스스로의 약점에 주목하고 있다. 외교무대를 통한 대화가 필요한 시기다.

일본의 대중(對中) 외교는 아베 혼자만이 아닌, 그동안 일본이 쌓아온 외교적 자산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비선(秘線)’을 통한 조용한 외교는 중일 외교가 갖는 특징 중 하나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소문 없이 처리하는, 이른바 ‘로키(low-key)’ 외교다. 관료를 통해 이뤄지는 공식 차원의 한일외교와 크게 다르다. 원웨이(one way)가 아닌, 서로의 입장을 탐색하면서 듣는 투웨이(two way)외교가 로키 즉, 비선외교의 정석이다.

비선외교를 실행할 경우, 가장 중요한 곳은 비선 자원이다. 오랜 기간 중일 관계발전에 노력해온, 중량감을 줄 수 있는 우호적인 인물이다. 중국식으로 ‘라오펑요우(老朋友)’, 일본인의 표현으로는 ‘신뢰를 줄 수 있는 인물’이다. 라오펑요우는 대박 스타일로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일단 시간적으로 길고, 특별한 인연을 통해 구축된다. 1세대만이 아니라, 2·3세대까지 이어간다.

한국보다 훨씬 더 극단적으로 행동하던 시진핑이 어떻게 아베와의 정상회담에 주목하게 됐을까? 은밀히 벌어지는 중일 협상 과정을 보면 그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언젠가 닥칠 한일 정상회담을 위한 참고로서의 답이기도 하다. 일본이 왜 한국을 중국의 변수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도 현재 진행 중인 중일 협상에서 찾을 수 있다.

소리소문 없이 진행되는 일본의 대중(對中)외교

중일 비선 교섭의 한 축을 이뤘던 야카자키 도요코 작가와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아들 후더핑 전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실질적 차원에서의 중일 정상회담에 관한 구상은 일본이 아닌, 중국에서 시작됐다. 지난 4월 중순 도쿄에 들린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아들, 후더핑(胡德平)이 주인공이다. 한국에도 알려졌지만, 아베와 만난 뒤 수상관저를 나서는 모습이 크게 보도됐다. 후더핑은 시진핑과 곧바로 전화할 수 있는 관계라고 한다. 혁명 1세대인 두 사람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 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다.

문화혁명 때 함께 고생한 경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남다른 우의를 갖고 있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든 시진핑과 선을 닿은 상태에서 아베와 만난 것이다. 후더핑과 아베는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보도돼지 않았다. 당초 두 사람의 만남은 비밀에 부쳐졌다. 언론에 알려진 사진을 통해 만났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된다. 이후 중국정부도 후더핑이 민간인 자격으로 아베와 만났다고 공식 발표한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후더핑과 일본과의 관계다. 한국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후더핑의 아버지 후야오방은 친일노선을 견지한 대표적인 중국 정치인이다. 1983년 총서기 자격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根康弘) 수상과 ‘중일우호21세기위원회’를 만든 인물이다. 중일 청년들이 서로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중일관계 구축에 주력했다. 1984년 10월 1일 건국기념일 35주년을 맞아, 일본 청년 3천 명을 천안문 한복판으로 초대해 양국간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토론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외국인의 중국 투자에 목을 매던 시기다. 후야오방의 친일노선에 따라, 이른바 일본경제의 제 1차 중국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그 같은 상황은 1986년 9월 후야오방의 실각과 함께 주춤해진다. 개혁·개방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수파의 공격을 받아 사퇴한다. 집단지도 원칙에 어긋나는 과도한 행동이 공격의 근거였다.

보수파들이 후야오방을 축출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친일노선이다. 중일 협력이 강화되던 시기, 나카소네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한다. 전후(戰後) 처음으로 이뤄진 수상의 공식방문이다. 중국 보수파들은 나카소네와 만나 중일 우호관계를 논한 후야오방을 어리석은 친일파로 몰아세운다. 3천 명의 일본 청년을 감히 중국 혁명성지(聖地) 천안문 한가운데 불러모았다는데 대한 반감도 크게 작용했다.

일본인과 후야오방의 연(緣)은 정치와 경제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학이란 다소 낭만적인 요소가 끈끈한 연의 시발점이다. 전후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 야마자키 도요코(山崎豊子)를 통해 본 후야오방이다. 1984년, 당시 최고의 여류작가 야마자키가 후야오방과 만난다. 작가가 중국 최고지도자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됐다. 당시 야마자키는 후야오방에게 두 가지 사항을 부탁한다. 먼저 베이징 내 일본인 학교 건립허가 문제다. 둘째, 야마자키는 집필 중이던 자신의 장편소설 <대지의 자식(大地の子)>에 대한 취재 협조를 부탁한다. 후야오방은 전면적인 지원을 약속한다.

(왼쪽부터)일본<아사히신문> 8월 5일자에 실려 동북아에서 파장을 일으킨 위안부 관련 특집기사. 파푸아뉴기니를 방문 중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내외가 7월 11일 웨와크에 있는 일본인 전몰자 위령비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시진핑, APEC 성공 위해 다 버린다

민주주의와 문학을 오가는 중국 총서기와 일본 여류작가와 관계는 후야오방 사후에도 계속된다. 일본인 학교건립 이후, 후야오방의 아내인 리자오(李昭)를 학교 이사진으로 올려, 유형무형의 지원을 계속한다. 보수파로부터 버림받고 사실상 연금상태에 있던 후야오방 가족들에게 외부로 통하는 밝은 빛을 제공해준 곳이 일본이다. 후야오방을 둘러싼 얘기는 정치가나 외교관의 영역만이 아니다. 스토리텔링과 감동에 주목하는 중국인·일본인 모두의 관심사다. 아베와 후더핑은 최고의 정치 지도자의 아들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베의 러브콜은 박 대통령만이 아닌, 시진핑에게도 적용된다. “조건 없이 서로 만나자. 지금 당장 이라도 베이징에 달려갈 수 있다”라는 게 아베의 메시지다. 아베의 러브콜은 밑져야 본전이다. 응하면 자신의 요청에 의한 결과라 자랑할 수 있고, 응하지 않더라도 중국과 달리 대화에 주력한다는 이미지를 세계에 과시할 수 있다. 아베의 러브콜은 오는 11월 이뤄질 중국의 빅 이벤트를 겨냥해 한층 더 강화된다. 아베는 APEC이 중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절호의 찬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양국 간의 정상회담은 99.99% 이뤄질 것으로 필자 역시 전망한다.

첫째 APEC에 올인하는 중국정부의 방침 때문이다. APEC은 시진핑 집권 이후 처음으로 갖는 대규모 국제회의다. 중국이 커지면서 서구에서 만들어진 황화론(黃禍論)은 아시아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영해권 문제가 시정되지 않는 한 APEC참가를 보이콧하려는 나라도 나오고 있다. APEC이 보이콧되거나, 반(反)중 아세안 연대회의로 끝날 경우 그 화(禍)는 시진핑 자신에게 돌아간다. APEC은 시진핑의 지도력을 외부에 천명하는 무대다.

APEC 성공여부와 관련해 관건을 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곳곳에 수십 척의 선박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의 지원은 앞으로 군사무기로까지 이어지면서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해군력이 전무한 아세안 국가에 대한 일본의 지원은 사막의 오아시스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APEC을 통해 일본이 중국과 해상분쟁 중인 나라의 리더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아베가 항상 강조하듯, 법에 의한 해상 질서유지와 같은 부분을 공동성명서에 넣어 베이징 한복판에서 중국의 체면을 구길 수 있다. 중일 정상회담은 그 같은 ‘비참한 상황’을 막으려는 예방책이라 볼 수 있다. 당장이라도 센카쿠를 점령해버릴 듯한 기세이던 중국이지만, APEC 성공을 위해 아베와의 만남에 목을 매게 된 것이다.

일중 정상회담 가능성의 둘째 근거는 아베의 집권기간에 관한 부분이다. 현재 아베는 2018년까지 집권을 염두에 두고있다. 앞으로 4년간, 총 6년에 걸친 장기집권을 통해 일본 전체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변화의 최종 목표는 새로운 헌법으로의 개정이다. 의미나 자구 몇 자 수정하는 헌법수정이 아니다. 아예 전부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 무기수출 3원칙 해제,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설치 같은 것은 신헌법으로 가기 위한 맛보기에 불과하다.

일본에서 부는 우향우 행진은 아베 한 사람에 의한 역류(逆流)가 아니다. 많은 일본인의 지지 하에 이뤄지고 있는 대세(大勢)의 가장자리에 선 인물이 아베일 뿐이다. 나가사키 원폭투하 추모일이던 8월 6일, <아사히(朝日)신문>은 종군위안부 관련기사를 1면을 포함해, 무려 3쪽에 걸쳐 게재했다.

한국 신문에 곧바로 전해진 것은 물론이다. 한국에 실린 기사의 대부분은 ‘아사히 아베 반격, 위안부 문제 직시를’과 같은 내용들이다. 위안부의 강제연행에 관한 증거가 ‘많다’는 것이 주된 헤드라인이다. 현재의 일본 내 ‘공기(空氣)’를 모르는, 한국인의 구미에 맞춘 기사에 불과하다.

슬로건만 난무… 상대 제압할 카드가 없다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3월 26일 귀국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대 일본 총리 중에서 해외 방문이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일본 내 언론 구도를 보면, 아사히와 마이니치(?日) 신문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이 친(親)아베로 돌아선 상태다. 아사히는 단카이(?塊) 세대를 대변하는 리버럴의 상징이다. 단카이가 정년으로 사라지면서 아사히의 판매부수가 급락하고 있다. 아사히는 어느새 민의에 어긋나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고 있다. 아사히의 3쪽에 걸친 특집의 핵심은 위안부 문제를 제기한 요시다 세이지(吉田?次)의 증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고해성사에 있다.

위안부 문제가 인권에 반하는 문제이며, 엄연히 존재한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아사히가 1992년 집중 보도한 요시다의 증언은 거짓이었다는 독백이 핵심이다. 아사히가 마침내 백기를 든 것이다. 그나마 아베를 견지하던 아사히마저 두 손을 든 판에, 당분간 그 누구도 아베에 맞서기 어려운 형국이다.

아사히의 추락은 아베의 장기집권을 보장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은 당초 아베를 넘어뜨릴 경쟁자가 나올 경우 그쪽에다 무게중심을 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아베 1인 무대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 채널을 통해 확인한다. 계속 거부할 경우 2018년까지 불편한 관계가 계속될 수 있다.

중일 정상회담이 확실시되는 셋째 근거는 역시 경제에 있다. 일본의 전체 무역적자 759억 달러가운데 26%가 중국발이다. 센카쿠를 통한 군사분쟁이 터질 경우 곧바로 경제마찰로 나갈 것이다. 이 경우 중국측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일중 정상이 만날 경우 그 여파는 곧바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튈 것이다. 시진핑과 아베가 만나 악수하면서 미래를 다듬는 판국에, 한국만이 고립된 듯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한반도를 뛰어넘는 큰 판이 비밀리에 그려질 수도 있다.

현재 벌어지는 한국 내 반일노선을 보면 두 개의 역사적 명언이 떠오른다. 먼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말이다. “국내 정치는 우리를 이기고 지느냐의 문제로 몰아넣을 뿐이다. 그러나 외교는 우리를 죽일 수 있다.” 다음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의 말이다. “나라에 봉사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파워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이 아니라, 어떤식으로 행동으로 옮길까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한다.”

2500여 년을 뛰어넘는 두 사람의 말은 한국 외교팀에 참고가 될 명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반일 정책은 글로벌 차원의 전략·전술과 거리가 멀다. 국내정치의 연장선에서 벌어지는 동네잔치쯤으로 비친다. 국제정치, 외교도 국내정치의 연장선에서 다룰 뿐이다. 반일만큼 지지율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도 없다. 그러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슬로건은 난무하지만, 정작 상대를 제압할 만한 구체적인 카드는 거의 없다.

‘전부 혹은 전무(All or Nothing)’가 아니라, ‘조금 더 이거나 덜(Much or Less)’인 작전이 기본자세일 듯 하다. 현안에 따라 서로 이해를 나누고 언쟁도 할 수 있는, 좌우를 오가는 입체적인 사고도 절실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에 불리하다.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