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악용 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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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도산 안창호는 샌프란시스코 노상에서 상투를 맞잡고 싸우는 한말이민을 보고 민족적 수치를 느꼈다고한다. 우리 이민사회에는 심심치않게 이런 꼴불견이 연출되곤했다. 작게는 먹고살기위한 갈등에서부터 크게는 불법유출한 부정한 돈으로 거액의 부동산을 사들여 분에 넘치는 호화생활을하는등 그 양상도 갖가지다.
학문연구가 목적인 유학생조차 기만달러를 들여 생일파티를 열었다는등, 최근엔 암흑가의 한패거리로 가담하는 한국인도 있다는등 얼굴 뜨거운 소식이 가끔 들려오기도 했다.
바로 얼마전엔 거액의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도피한 해외출국자를 서울의 피해자가 뉴욕까지 추적해 납치극을 벌이다 미국경찰에 체포된 사건도 있었다. 모두가 망신스러운 사건들이다.
빚을 받아내려는 채권자의 방법도 정당한 것은 아니었으나 부도나 사기에 대해 매우 엄격한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범법자가 해외도피길에 오를수 있었을까.
해외도피가 수월하게 성공하는 전례를 남긴다면 8월부터는 해외여행과 이민이 대폭 자유화되는데 이와같은 경우가 더많이 일어날 것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대검이 범법자의 이른바 「번개출국」을 막는 여러 대책을 세워 실시하기로한 것은 늦은감은 있으나 바람직한 조치다. 정부가 마련한 국민의 해외진출 지원방안은 국민의 발전의지와 능력을 내외로 최대한 발휘하자는데 그 취지가 있는것이지 「도망자」를 양산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검의 대책은 우선 피해자의 신고가 있으면 대상자의 출국을 금지시키고 관련사건에 대한 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지금도 빚을 갚지않고 이민길에 오르려는 사람이 채권자의 신고로 발이 묶이고 당국 또한 4천4백여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있다. 그렇다고 1백% 적발은 어려운 일이니 유관기관사이의 긴밀한 협조로 효율적인 예방체제를 갖추어야할 것이다.
아울러 외화도피에 대해서도 가일층 주목해야 한다. 가구당 이주비10만달러는 사실상 우리의 국력에 비해 힘에 부치는 과다한 액수다. 외국에 나가 고생하며 허송세월 말고 빨리 정착터전을 닦자는 뜻에서 다소 무리하게 책정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 이상의 외화를 빼 돌리려는 사람은 우선 그 동기가 불순하다. 모국의 부를 일신의 안락을 위해 남용하는 것같아 옆에서 보기에도 민망하다.
따라서 공항을 통한 외부유출의 루트를 막는것도 중요하지만 이른바 「도피성 이민자」들이 사용하는 갖가지 수법에 대한 경계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대책 가운데 또하나 주목을 끄는것이 마약의 밀반출이다. 어느덧 한국이 동남아시아의 마약생산지와 일본·미국등 마약소비지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이 됐다는 외신보도를 자주 접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까지 한국인의 이름를 휘날리는 것이 국익이라고 범법자들은 판단했단 말인가. 당국의 철저한 색출이 요망된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한국이민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려면 「악성이민」의 발생소지를 국내에서부터 발본색원해야 한다. 해외진출의 문호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몰려오는 한국인」에 대한 외국인의 눈초리도 날카로와짐을 알아야한다.
한국인 이민은 대부분이 대학졸업자고 생활도 중·상층이다. 간단한 질문으로 가끔 동양인을 당황하게 만드는 미국인들은 『왜 그런 좋은 조건의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오는가』하고 묻는다. 이 질문에 온당한 답변을 할수있는 사람만이 한국인 이미지에 먹칠을 하지않는 「정당한 해외이주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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