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와 선|이열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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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단계연 벼루에 물 한수저 붓고 송연묵을 간다. 먹에는 천보구여라는 금박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향긋한 먹 냄새가 방안에 번져가고 물그릇에 담가놓은 양호장봉(붓)에서 물방울이 솟는다. 그림 그릴 준비는 다 되었는데 앞에 펼쳐놓은 하얀 화선지가 깨끗한 채로 좋아 보여 붓 대기가 주저된다.
붓에 먹물을 흠뻑 적신 다음 마음 내키는 대로 종이 위에 휘둘러본다. 먹물은 검은빛을 토하며 흰종이 위에 번져간다. 마음이 후련하게 풀리는 기분이다. 이 화선지에 먹물 번지는 맛 때문에 동양화를 한다고 얘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30년간을 갈아온 먹인데 이 맛은 갈수록 내 가슴속 깊이 스며든다. 마치 먹이 화선지에 스며 나가 듯.
동양화에 「골법용필」이란 말이 있다. 사물을 그리되 그 본질을 그리라는 것이다.
잡다한 뜬 잎이나 너불가지를 다 매어 버리고 속에 있는 알 고갱이를 찾아내어 고?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화에서 말하는 데생하고도 다른 뜻이 있다.
그런데 이 골법을 찾아 그린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내 그림에는 설명이 너무 많고 수식이 너무 많다.
설명이나 수식은 실은 합리주의와 변증법을 생리로 하는 서구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간결한 선 몇 가닥으로 무궁 무진한 내용이 함축되게 하는 묘미는 동양화 아니고서는 달리 찾을데가 없다. 이렇게 골법화된 형체가 나머지 여백공간과 긴밀히 관계하면서 은밀한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여백이 그래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데 그 하얀 공간에 끝없이 번져 나가는 운율이 우리 마음에와 닿을 때 우리는 선의 세계가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선의 세계는 우리 동양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신의 지고한 경지다. 선은 직관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세계로 이것은 논리보다 몇 갑절 귀하다.
그러고 보면 동양화에서 말하는 골법은 직관의 터득이란 점에서 선과 통하고 나아가서 무위와 통한다. 우리의 선조들이 자연을 정신의 요람으로 삼고 거기에서 진리를 깨달은 높은 뜻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최근에 이르러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 선을 연구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으며 특히 젊은 학생들의 상당수가 여기에 매료되고 있다고 한다.
고도한 과학문명이 몰고 온 이 커다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의 정신을 끌어 들어보겠다는 그 생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너무나 많다. 우리에게서 잊혀지고 있는 정신적인 값진 것을 서구사람들이 가져다가 장차 살아남을 새로운 가치로 삼고 있는 사이, 우리는 저들이 만들어놓은 문명의 찌꺼기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선은 지금에 와서는 불가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사유세계의 극치로 새겨야한다.
먹을 갈면서 그 뜻, 하늘의 뜻이 내 마음에 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약력
▲33년 서울출생 ▲서울대 미대 동대학원 회화과 졸업 ▲국전 문공부장관상, 동추전작가 ▲현재 경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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