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의 무대가 없다|이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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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까지 진출했던 한국의 대중가요 가수들 중에서 정작 세종 문화회관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본 가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이 바로 대중가요를 보는 지성인들의 예술적 편견을 보여주는 한국적 반지성의 상징이다.
대중가요에 있어서 음반활동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무대공연인데, 대중가요가수들은 오직 돈벌기 위해 취객이 들끓는 술집의 무대를 밟는 것을 재외하고는 그들의 예술적 꿈을 구현할 무대가 없는 것이다.
시민회관 당시에는 가수들은 시민회관 무대에서 개인 리사이틀을 한번 가져보는 것이 가수로서 최대의 목표 이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가수로서 성숙했고 예술적 감각도 익혀 왔었다.
그런데 시민회관자리에 세종 문화회관이 들어서고 대중 예술공연에는 대관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정해지면서 꿈의 무대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리사이틀을 굳이 가지려면 무대공연에 적합하지 않은 영화관을 벌거나 시설이 뒤떨어진 낡은 극장뿐인데 이미 매스미디어를 통해 해외의 화려한 쇼에 익숙한 관객이 그런 어설픈 무대를 용납할리 없다. 이런 악조건의 공연장에서 그나마 의욕을 갖고 리사이틀을 가졌던 가수들이 한결같이 공연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사실 현재 한국의 가요는 중요한 무대공연이 포기된 상태다.
대중예술이란 이유하나만으로 세종 문화회관에서 공연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사회학자「허버트·갠즈」의 이론처럼 사회의 한 구성부분이 다른 구성부분에 대한 공격행위인 것이다. 다시 말해 고급문화만을 예술이라고 고집하는 지성인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가해행위라고 볼 수 있다.
바로 그런 현상이 세종 문화회관을 대중예술공연에는 대관치 않는다는 현실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세종 문화회관을 순수예술의 전당으로 지켜나간 다는 것이 대관을 거부하는 큰 이유로 볼 수 있는데 이미 주변 분위기나 시설이 세종 문화회관 못지 않은 국립극장이 순수예술의 전당으로 지정되었는데 세종 문화회관까지 순수예술의 전당을 고집하는 처사는 납득하기 어렵다.
순수예술 공연만을 허용한다는 원칙이라면 세계 가요제나「앤디·윌리엄즈」내한공연에 대관한 것은 무슨 이유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세종 문화회관의 4천 2백 석의 좌석은 처음부터 대중 공연장으로 건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대중공연장이라면 당연히 대중이 즐기는 대중 예술공연을 위해서도 개방되어야 마땅하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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