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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질·보모 역에 육아 강좌까지…구슬땀 흘리는 여대생 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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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머리·어깨·무릎·발. 발·무릎어깨·머리-.』
고사리 손길이 박자 맞추어 움직이면 청바지 차림의 여대생들도 잊었던 동심을 되찾는다.
장마 끝에 반짝한 햇볕이 내려 쬐는 논밭에서 마을 아낙네들과 함께 호미질하는 학생들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는다.
경기도 광주군 도척면 유정1리. 성심여대 YWCA 회원 16명이 여름철 농촌일손을 돕고 있다.
새벽 5시30분. 장 닭 홰치는 소리와 함께 잠자리에서 뛰쳐나와 논길을 따라 뛰면서 마을 청소를 돕는다.
상오 7시. 일손 바쁜 마을 아낙네들이 아침밥을 설치고 논밭에 나서면 여대생들을 동네 꼬마들을 탁아소에 모아 보모가 된다.
놀이에 신이 난 아이들이 또래끼리 어울릴 때쯤 학생들은 호미를 들고 마을 논밭에 나선다.
강한 여름 햇살이 밀짚모자 틈새를 비집고 논거머리가 스타킹 위를 꾸물거려도 땀 흘리는 보람 때문에 스스럼이 없다.
힘든 일과 속에도 기다려지는 시간은 흩어졌다 함께 모이는 점심시간.
보리밥에 열무김치가 식욕을 돋우고 힘든 농사일에 살찔 염려가 없어 숟가락질이 왕성하다.
밥짓기와 설겆이 끝에 권농가락을 흥얼대면 청바지·통기타 세대의 나약함이 허물 벗듯 사라진다.
한낮 열기가 가시면 하오 8시부터 아낙네들을 위한 교양강좌가 시작된다.
육아·부엌위생·여권신장에 열을 올리며 모기떼와 여름밤 무더위의 고통을 잊는다.
밤12시. 여름하늘 별을 헤아리며 설친 잠을 재촉한다.
유정 부락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인데도 고속도로와 산업도로에서 멀어 도내에서 개발이 가장 늦은 벽지 (?) .
때문에 성심여대 YWCA 회원들은 78년부터 4년째 이곳을 찾고 있다.
해마다 이곳을 찾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사업비를 마련한다.
올해 비용은 모두 20만원. 아르바이트로 번 돈 6만원, 회비 8만원, 학교 지원비 6만원.
이곳 말고도 이웃 유정2리·양림리·방도1리·추곡리 등에서 같은 회원 70여명이 6일부터 15일까지 10일 동안 농촌 일손은 돕고있다.
입학 후 처음 농촌봉사에 참가한 최옥경 양(19·자연계열1년)은 "『약볕에서 한나절 밭일을 하고 나니 집에서 무심코 대했던 채소들이 그렇게 크게 보일 수가 없다』며 발갛게 달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마을회관에서 어린이들과 유희를 하던 김운봉 양 (20·국사학과2년) 은 『10일 정도의 봉사로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공연히 농촌 어린이들에게 도시의 때만 남기고 가는 것이 아닌지 두렵다』면서 방학 중 짧은 기간에 한정된 봉사를 아쉬워했다. <전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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