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가시방석 은행장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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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덩치 큰 거래기업이 부도위기에 직면할 때면 정말 몸이 따가와요. 뜬눈으로 밤을 지샌 적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셈이지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은행장자리를 모든 행장은 굳이「가시방석」이라고 비유한다.
율산파동 때는 10개 은행장(5개시중은행·5개특수은행)이 모두 경질되었고, 지난해 정화의 회오리까지 합치면 최근 2년 동안 모두 19자리의 은행장이 갈렸다.
그 중에서 9명이나 불명예 퇴진을 했으니 가시방석이란 결코 과장된 비유만도 아니다.
은행원을 두고 가장 안정된 직업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총수인 은행장 자리는 이처럼 단명, 불안한 것이 되어버렸다.
특히 율산에 대한 불신대출의 책임을 물어 주거래 은행장을 형사 처벌한 사건은 충격적인 선례를 남겨 놓았다.
설령 착복을 하지 않았더라도 대출을 잘못해서 은행에 손해를 나게 했으면 배임죄라는 새로운 금융공식이 나온 것이다.
율산파동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설마 했던 기업들까지도 긴급 SOS를 쳐대는 가운데 은행으로서는 바투바투 결정을 내려야 했다.
책임질 일은 밀어서밀어서 위로 울라갔다. 어느 은행장도 혼자 책임질 결정은 내리려 들지 않았다.
은행감독원에 쫓아가고 재무부로 달려가서 사전허락과 지침을 받아내야 행동에 옮겼다.
은행이익만을 생각하고 자금지원을 중단했다가는 부도에 따른 사회적인 물의를 뒤집어 쓸것이고 그렇다고 망해가는 회사에 무작정 돈을 대주다가는 배임죄를 피할 수 없는 딜레머에 빠져들 것이다.
심지어 은행측에서는 부도를 냈으면 싶었던 기업에 대해 정부가 지원을 계속하라는 경우에는 『정부가 뒷 책임을 진다』는 각서까지 받아내는 촌극을 벌였다
그래야 마음이 놓였다. 은행장으로서의 소신을 포기하는 것이 차라리 속편한 일이었고 당장 면책의 방편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했다.
정부의 입김도 그러했지만 은행 스스로도 타율적인 경영에 기꺼이 순응해왔다.
이 같은 형편에서 발표된 은행자율화 방침은 우선 은행장들을 가장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 전처림 재무부나 감독원에 의논을 청하면 『알아서 하라』는 모호한 반응뿐이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는데 이젠 알아서 하는 것을 두고 보겠다는 식의 분위기로 뒤바뀌었다.
정말 알아서 해도 괜찮은 것인지, 어디까지 알아서 하라는 것인지-.게다가 그동안 알아서 해본 경험이 없었던 까닭에 더 당황스러운 것이다.
지난해 연말 자율화 방침이 발표되자 5개 시중은행장은 즉시 은행장협의회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직원들 봉급인상이나 주주들에 대한 배당률 등 주요 결정사항은 여기서 만장일치로 합의하에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멋모르고 상호경쟁을 벌일게 아니라 우선 공동보조를 취해가며 자율화의 분위기를 살펴 나가자는 것이 이 기구의 기본 취지였다.
정부가 아무리 손을 떼겠다고 공언을 해도 쉽사리 그렇게 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은행장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당장 손을 뗀다면 은행자신부터 곤란한 점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워낙 저질러진 일, 물려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은행마다 수백억 규모이상의 부실거래기업이 없는 경우가 없다 .거액의 지급보증을 서준 기업에 탈이 나기라도 하면 은행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키 어려운 위험부담을 안고있다.
훌훌 털어 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사슬에 휘감겨 있는 것이다.
은행장들마다 새로 취임할 때면 으례 전 임행장시의 부실기업을 과감히 정리해버리려고 해왔다.
남이 저질러 놓은 일이 내 책임으로까지 비화되기 전에 터뜨려서 자기부터는 새 출발을 하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시도에서 그쳤고 더덕진 묵은 때는 계속 이월되어 왔다
자율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은행장들은 이처럼 지고있던 짐을 마음대로 벗어 던질 수도 없는 것이다.<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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