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미국 CIA 요원이 리비아에 무기 불법 수출|신문 폭로로 미 조야에 큰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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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리비아에 수출금수품인 무기들을 공급해준 장본인은 바로 미국인들, 그것도 전적으로 CIA (미 중앙정보국) 요원들과 CIA의 장비 납품업자들이었다.
CIA 요원 출신인 무기 수출업자 「에드윈·월슨」 (52)과 「프랭크·터필」 (41)은 5년 전부터 리비아에 불법적으로 무기와 두뇌를 팔아왔다.
이들은 미제 무기와 폭약을 리비아로 빼돌리는가 하면 암살용 무기 제조공장의 건설을 도왔으며, 정치 암살을 방조했고 테러와 살인기술을 가르칠 교관으로 몇 십 명의 전직 그린베레 부대 원들을 소개했고, 이 모든 일에 현직 CIA 동료들을 알게 모르게 이용해왔다. 미 당국은 거의 처음부터 이들의 활동을 제보 받고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결국 범인들을 놓치고 말았다.
요즘 미국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이른바 「가다피 커넥션」의 줄거리다.
5년 동안 쉬쉬해오던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진 것은 전 뉴욕타임스 기자인 「시머·허시」가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장문의 폭로 기사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허시」기자의 취재원은 역시 전 CIA 요원인 「케빈·멀케이」(38).
76년 범인들과 한때 동업하다가 불법거래의 낌새를 알아채고는 곧 수사당국에 신고한 사람이다. 수사당국의 무성의에 환멸을 느낀 그가 「허시」기자에게 털어놓은 「가다피 커넥션」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68년까지 CIA에서 고속통신 및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던 「멀케이」가 「윌슨」과 만난 것은 75년. CIA 1급 요원이었던 「윌슨」은 70년대 초부터 무역업을 하고 있었다. CIA 통신기술자 출신의 「터필」은 바로 그의 동업자.
「터필」은 밀수기도 등 일련의 사건으로 권고사직 당한 이른바 CIA 불명예제대자다.
「멀케이」는 76년 3월 「윌슨」의 권고에 따라 동업자 자격으로 인터테크놀러지사의 창설에 참여했다. 고속통신장비와 컴퓨터 기재의 수출회사였다.
두 달 뒤인 5월 하순께 「윌슨」은 「멀케이」를 데리고 당시 CIA 비밀공작담당 부국장 보좌관이던 「디어도어·새클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윌슨」은 「새클리」에게 자신과 「터필」이 리비아에 가서 수출상담을 위해 「가다피」를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클리」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멀케이」는 「윌슨」이 CIA의 비밀요원이라고 생각했다. 「윌슨」이 노린 대로였다.
이 때부터 「멀케이」에겐 대 리비아 수출업무가 맡겨졌다. 「가다피」의 첫 주문품은 폭발물을 시간에 맞춰 터뜨릴 수 있는 조절장치 (타이머). 73년 중동 전 때 이스라엘이 리비아에 깔아놓은 지뢰와 수중기뢰들을 모두 터뜨려 버리기 위해서라는 게 표면상의 구입 목적이었다.
이들은 타이머 견본의 생산을 CIA 단골 장비 납품업체인 아메리컨 일렉트로닉 사와 사이언티픽커뮤니케이션 사에 맡겼다. 아메리컨 일렉트로닉 사 직원들과의 협의 장소에는 「윌리엄·와이젠버거」등 현직 CIA 요원 2명이 배석까지 했다. 누가 봐도「공식비밀공작」이었다.
몇 주일 후 견본을 받아본 「가다피」는 무려 10만개의 타이어를 주문해왔다. 얼마 후 「터필」이 리비아에 다녀오면서 주문량은 30만개로 늘더니 결국 50만개까지 뛰어올랐다. 「가다피」가 지불할 대금은 3천5백만 달러. 생산비는 불과 2백50만 달러로 10배가 훨씬 넘는 짭짤한 장사였다. 「멀케이」가 「윌슨」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타이어 계약당시 「윌슨」은 리비아인 들에게 트리폴리 근처에 암살 공작용 특수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조그만 공장을 꾸며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이를 위해선 많은 양의 고성능 폭약이 필요했다. 그러나 폭약들은 연방 정부의 허가 없이는 반출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윌슨」은 실로 아슬아슬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폭약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RDX.「공업용 용매」란 딱지를 붙인 이 폭약을 여객기 화물칸에 실어 우선 덜레스공항으로, 다음엔 유럽을 거쳐 리비아로 위장 공수했다.
「멀케이」가 신고의 결심을 굳힌 것은 8월이었다. 그가 코펜하겐에 출장 가 있을 때 본사의「윌슨」과 「터필」은 급전을 보내왔다. 즉시 모든 일을 중단하고 워싱턴으로 돌아와 제너럴다이내믹스 사로부터 레드아이 지대공 미사일을 1기 구입하라는 지시였다. 미 착용으로 사람이 들고 쏠 수 있는 이 미사일은 비행기 격추용으로, 리비아엔 수출할 수 없는 무기였다.
「멀케이」는 본사로 돌아와 서류함들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발견된 회사의 비밀 서류철엔 그가 의심했던 것 이상의 사실들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가다피」뿐 아니라 우간다의 「이디·아민」에게도 3백20만 달러 어치의 폭약과 고문기구들을 공급한 사실도 적혀있었다. 「멀케이」는 9월초 CIA와 FBI에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신변의 안전을 위해 이름을 바꾸고 지하로 들어갔다. 한때는 M-16 소총을 갖고 야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멀케이」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CIA·FBI뿐 아니라 법무성 등의 수사기관은 모두 한몫씩 끼어 들었지만 수사는 거북걸음이었다.
두 사람이 무기 불법수출 및 살인음모 죄로 기소된 것은 80년 4월.
그러나 「윌슨」은 이미 해외로 뛴 후였다. 그는 넉 달 후인 8월 말타 도에서 붙잡혔으나 미국에 인도되기 전에 다시 탈주했다. 보석으로 풀려났던 「터필」도 9월3일 유럽으로 도망쳤다. 두 사람은 현재 트리폴리에서 「가다피」의 여러 사업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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