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요구 서류가 너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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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은행돈 빌려쓰는 사람치고 한두번에 서류절차를 끝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통 너댓번 정도는 구청과 동사무소· 은행사이를 들락거려야 한다.
담보에 흠이 있다거나 서류가 잘못된 탓도 있지만 은행들이 워낙 해오라는 것이 많다.
최근 들어 1천만원 이하의 소액대출은 감정을 생략하는 등 부분적인 간소화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아직도 첩첩산중이다.
친절·불친절은 고사하고 은행이 해오라는 서류들이 대체로 어떤 것들이며 또 꼭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를 따져보자.
우선 대출신청서류를 보면 담보대출인 경우 필수서류가▲차입금신청서▲사업계획서▲이사의 법인인감증명▲이사회 기분결의서▲법인등기부등본▲사업자등록증사본▲정관 ▲재무제표 ▲차주의인감증명▲주주명부▲확약서 등 11가지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도 필요시 은행이 요구하면 제출해야 할 서류가▲이사회 입보승인서▲자금용도확인서▲인가서 또는 추천서사본▲타 금융기관과의 거래경과표 ▲납세완료증사본▲제3자 담보제공증서▲담보제공증서 등 7가지.
그러나 은행측이 ,필수서류이든 필요시 징구서류이든 간에 무조건 받고 보자는 주의니까 실제로 기업이 대출신청 때 은행에 내야하는 서류는 모두 20여가지가 넘는다.
과연 이 많은 서류들이 꼭 필요한 것인가.
대출은 신청한다고 해서 꼭 대출을 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이같이 복잡한 서류들을 모두 챙겨와야 말상대를 해준다.
그리고 나서도 대출을 받을 때 갖춰야 되는 서류가▲어음▲은행거래약정서▲근저당권설정계약서▲차주의 인감증명▲보증인의 인감증명▲담보제공증서▲사법서사위임장 등 7가지 필수서류에다 ▲5가지의 필요시 징구서류를 합치면 10가지가 넘는 서류를 또 꾸며야한다.
은행측으로부터 신용조사를 받을 때는 재무제표 등 6가지의 서류를 제출해야되니까 심한 경우에는 40여 종류의 서류를 은행에 갖다 내야한다.
이 중에는 2중 3중 겹치는 것이 있을 뿐 아니라 전혀 필요도 없이 습관적으로 받고 있는 서류들도 적지 않다.
대출 신청시의 19가지 서류를 예로 하나하나 훑어보자.
우선 차주의 인감증명은 은행이 대출해주기로 결정한 다음에 받아도 될 서류인데도 대출 신청시??2중으로 요구하고 있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철저하게 개인담보를 세우면서 주주명부까지 제출하라는 것도 불필요한 일이다.
이 사회의 기재 결의서를 제출하라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대표이사가 이 사회 몰래 횡령할지 몰라서 이것을 받고 있다지만 대표이사의 법적 지위까지 은행은 인정하려들지 않는 셈이다.
이사회의 기재 결의서를 생략한다면 여기에 찍힌 도장의 진부를 확인해주는 이사의 법인인감증명도 자동적으로 필요없게 된다.
사업계획서나 재무제표 등은 신용조사 할 때 제출하게 되어있고 모 개략적인 내용은 차입금신청서에 모두 적혀 나온다.
회사정관이나 사업자등록증 사본 등도 법인등기부등본 하나로 대체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당신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습니다」라는 확약서도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대출 신청시에 꼭 받아야할 서류는 지금의 가지에서 차입금신청서와 법인등기부등본 등 2가지로 줄어질 수 있다.
필요시 징구서류로 되어있는 경우도 불필요한 것이 많다. 개인이 의사를 위해서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 입보를 하겠다는데 이사회의 입보승인서는 무슨 필요가 있으며 담보제공증서면 됐지 담보체공 내용조서는 모 왜 써야하는지 모르는 일이다.
꼭 이처럼 까다롭게 해야 돈을 안 떼이는 것인가 지난 한해 동안 5개 시중은행이 4백50억원이나 떼인 것은 그러한 까다로운 조차도 미흡했다는 뜻인가.
그렇다고 해서 정말 서류에 나타난 신용상태 위주로 철저히 따져 대출을 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현재의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서류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은행원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있다
개선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매너리즘 속에 빠져 공연히 긁어 부스럼 될지 모를 일을 왜 하느냐는 식의 분위기들이다.
공연히 요란한 떠는 어깨에 두르고 전시적인 친절 캠폐인을 벌일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동사무소 한번 덜 가게 해주는 것이 진짜 친절이 아닐까.<이봉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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