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설탕 안 넣은 사이다 맛"「달기약수」(청송읍 부곡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물맛이 마치 녹물처럼 싸- 하고 녹내가 물씬 난다. 짜릿하게 혀를 찌르는 것이 그대로 당분을 뺀 사이다 맛이다.
한 쪽박 들이켜면 금새『끄윽』하고 트림이 나며 뱃속이 시원하게 뚫린다. 「달기약수」는 그래서 위장병 치료에 특효약으로 손꼽힌다.
경북 청송군 청송읍 부곡동「달기약수」마을-.
청송읍에서 돌투성이 흙 길을 따라 3km쯤 달리면 소나무와 낙엽송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들어찬 태행산(해발 9백80m)계곡 바위틈 곳곳에서 시원한 약수가 솟아오른다.
이 계곡 양편에 여관·음식점·기념품가게 등 관광객 상대업소 45가구가 조그마한 약수마을을 이루고 있다.

<시간당 4∼10말 나와>
마을의 중심부에 있는「하탕」(하탕)에서 계곡상류의「상탕」(상탕)까지 6백여m사이 계곡에 10개의 약수터가 띄엄띄엄 놓여있다.
약수터마다 1시간에 4∼10말씩 약수가 쉴새없이 솟구친다.
약수터뿐만이 아니다. 가뭄으로 바싹 줄어든 계곡물 밑에서도 마치 구슬 같은 물방울이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약수가 솟아오르는 바위는 마치 녹슨 쇳덩이처럼 벌겋게 물들어있다. 약수 속에 함유된 철분 때문이다.
「달기약수」는 어떤 약수보다 철분이 듬뿍 담긴 탄산약수다.
약수로 밥을 지으면 밥 색깔이 파르스름해지며 윤기가 자르르 도는 찰밥이 된다. 약수를 오래 담았던 주전자 안쪽이 벌겋게 변해버릴 정도다.
이 같은 철분과 탄산성분 때문에 달기약수는 위장병 치료에는 특효가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며칠간만 약수를 마시고 나면 웬만한 위장병은 씻은듯이 낫지요. 이곳 사람들은 위장병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요.』마을주민들은 그래서 사시사철 전국에서 수많은 위장병환자들이 이곳으로 찾아든다고 자랑한다.
지난해에는 인근 주왕산국립공원 관광객을 포함, 모두 43만4천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여기에선 해장국이 따로 필요 없어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어도 다음날아침 약수 한 쪽박만 들이켜면 숙취가 사라지고 속이 개운해 지지요.』
서울여관 주인 홍순효 씨(63)는 12년 전 이곳에 들어오고부터는 위장병 때문에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게 됐다며 껄걸 웃는다.

<옻닭요리도 특효약>
이곳에 2주일째 계속 머무르고있다는 한원복 씨(56·대구시 남구 대명1동 629)는『매일 전식에 약수를 1∼2되씩 마셨더니 3년 동안 고생하던 장염이 씻은 듯이 나았다』며 기뻐한다.
이 마을의 명물은 약수 말고도 약수에 삶은 영계다.
살이 연하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으며 감칠맛이 그만이다. 특히 옻 껍질을 함께 넣어 삶은 옻닭요리는 옻이 오르는 부작용이 없고 향기가 좋아 배가 늘 찬 사람들에겐 역시 특효약으로 친다.
『달기약수탕에 들렀어도 약 닭을 먹지 않고 돌아가면 큰소리치지 못하지요.』홍씨는 약수탕에서는 닭을 꼭 잡아먹어야 약수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10개 약수탕에서는 이 지역 번영회가 엿을 팔고있다. 단 엿을 먹으면 갈증을 느끼고 그렇게되면 약수를 많이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익금은 모두 약수탕 관리비에 쓰인다.
그러나 약수가 너무 흔하다보니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 『어느 곳을 파도 지하수에 약수가 섞여 나와 자연식수가 오히려 귀한 편입니다. 약수로 된장·고추장을 담그거나 묵을 만들면 금새 삭아서 못쓰게돼요.』홍씨는 이 때문에 1km떨어진 상류에서 물을 끌어다 쓴다고 한다. 게다가 약수가 나오는 계곡에는 버들(송사리종류)외에 다른 물고기를 찾아볼 수 없다.

<백여년 전에 첫 발견>
이 약수터가 처음 발견된 것은 1백여년 전인 1870년께.
조선조말기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가 계곡아래 감평마을의 논에 계곡 물을 대기 위해 수로(수로)공사를 벌이던 중 바위틈에 서있는 버드나무를 뽑아냈더니「펑」하며 물줄기가 솟아올랐다는 것.
이상히 여겨 물맛을 보았더니 속이 편해져 약수터로 정하고 이후부터 매일 이 약수를 마셨다는 얘기가 전해내려 온다.
기록은 없지만 지금도 수로가 남아있어 계속 물을 내려보내고 있으며 권성하의 고손자인 태원 씨(45)가 청송읍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믿을만한 전설인 듯하다. 약수터가 발견될 당시의 이곳 행정구역은 청송군 부내면 달기동. 그래서 주민들은 지금까지도 옛 지명을 따 달개(달기의 사투리발음)약수라고 부른다. 8·15해방직후 까지만 해도 달기약수터는 조그만 초가집 3채가 들어서 있었을 뿐 청송면 주민들 사이에나 겨우 알려졌던 산골 약수터였다.
그러나 6·25직후부터 차차 약수가 위장병에 좋다는 소문이 번지기 시작, 가까운 이웃 면 주민들은 5월 단오나 복날이면 이곳을 찾아 하루를 즐기다 돌아가곤 했다.

<개발계획 5년째 방치>
25년 전 대구에서 위장병을 고치러 달기약수를 찾아왔다 정착한 대구여관 주인 노문학 할머니(73)는『그 당시 위장병으로 밥도 못 먹고 다 죽어갔었는데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아와 2∼3개월 지내고 나니 병도 모두 낫고 자연이 하도 좋아 그만 눌러 살게 됐다』고 했다.
달기약수탕은 이곳에서 12km쯤 떨어진 주왕산과 함께 76년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모든 기존건축물의 증·개축이 금지되고 개발도 제한됐다.
주민들은『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까지는 좋으나 종합개발계획만 세워놓은 채 5년이 넘도록 전혀 손을 대지 않아 숙박·교통시설 부족에 따른 관광객들의 불편이 말이 아니다』며『어서 빨리 개발을 하든지 증·개축을 허용하든지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