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기업 개혁 좌절시킨 철도협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철도 파업을 둘러싼 노사 교섭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파업이란 극한 상황을 피한 것은 다행이지만, 정부는 스스로 법과 원칙을 어기는 바람에 몇가지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남겼다.

무엇보다 정부는 객관적 명분이나 설명없이 몇년간 추진되던 민영화 원칙을 바꿈으로써 신뢰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공기업 민영화는 오래 전에 내려진 방침으로 이미 KT 등 8군데는 민영화가 마무리됐다.

그런데 새 정부는 아무런 의견수렴 과정 없이 발전과 가스의 민영화를 슬며시 미룬 데 이어 이번에는 철도 운영 부문의 민영화 계획을 공식 철회했다.

철도는 현재 연 6천억~7천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으며, 대대적인 수술이 없을 경우 2020년 국민 부담이 50조원에 이른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비효율과 문제를 그대로 두겠다는 것은 정부의 직무 유기다.

건설교통부장관은 민영화는 철회해도 철도부문 개혁은 계속하겠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원칙은 무너졌고 앞으로의 처리는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노조 압박을 견디지 못함으로써 '밀면 밀린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 이는 앞으로 민간기업 노사협상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됐다.

민영화의 철회를 명분으로 파업하겠다는 것은 현행 법상 불법으로 해석되며, 정부도" 명백한 불법"이라고 천명했다. 그런 정부가 정작 협상 테이블에서는 덜컥 이 요구를 수용해 버렸으니 스스로 법을 어긴 것이다.

최근 민간기업에서는 노조가 외자유치까지 개입할 정도로 지나친 행동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고 한다. 두산중공업 때는 노동부장관이 나서서 노조 손을 들어주더니 이번에는 정부가 앞장서 불법에 굴복함으로써 본격적인 춘투(春鬪)를 앞두고 재계가 더욱 설 땅이 없게 됐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한국을 평가절하하는 요인은 정책의 일관성 없음과 노사 문제에 있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두가지 모두에서 더 큰 타격을 입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