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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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탈리아의 코르티담펫초. 1956년 제7회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흑·주·황의 삼색에 오륜이 그려진 기가 펄럭였다. 베토벤의 심퍼니9번『합창』중에서「환희,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 울려 퍼졌다.
분단된 동·서독의 선수들이 함께 행진해 들어왔다. 국호도「독일」.
올림픽에서의 독일단일팀 구성이 이루어지고 그들은 분단국의 아픔을 씹으며「독일」이란 한 국호아래 뭉쳤다. 국토통일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마음의 통일을 과시한 것이다. 감격적인 순간이다.
그후 동·서독은 56년 16회 멜번대회, 60년 l7회 로마대회, 그리고 64년 18회 동경대회에 「전독단일팀」을 구성해 참가했다.
전독단일팀구성은 나라안팎의 노력의 결과였다. 55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동·서독의 단일팀구성 참가」를 조건으로 동독올림픽위원회의 IOC가입을 승인했고 이에따라 DSB(서독의「독일스포츠연맹」)와 DTSB(동독의「독일체육연맹」)가「전독일단일팀구성」을 합의한 것이다.
동·서독간의 스포츠교류도 동시에 활발화했다.
57년엔 무려 1천5백30회의 동·서독간 교류에 3만6천명이 참가했다. 61년까지 그 무드는 지속되었다.
61년8월12일 베를린장벽이 구축되고 실질적인 스포츠교류가 중단되면서 오직 64년 동서대회 파견선수 선발경기만 열린 때문에 동서독교류는 격감됐다.
양독간 스포츠교류가 동독체육인의 탈출을 조장하는데 화가난 동독이 스포츠교류를「인신거내」라고 비난한 것도 58년의 일이다.
그후에도 동·서독스포츠교류가 아주 단절된 것은 아니다. 66년부터 소규모이긴 하지만 교류가 재개됐다.
또 72년 뮌헨 올림픽엔 동독선수들이 서독땅에 들어와 경기를 가졌다. 서독내에서 동독의 국기가 게양되고 동독국가도 연주되었다. 뮌헨대회에서의 동·서독경기는 치열한 것이었지만 분단을 극복하는 현실적 접근이란 점에서 평가를 받았다. 그때 동·서독 단일팀이 참가했더라면 세계l위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어제한국올림픽위원회는 남북한 단일팀구성을 북한측에 제의했다.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받은 메달수는 한국이 금1 은5 동11로 17개, 북한이 금2 은3 동3등8개로 모두 합치면 25개다.
단일팀이 실현되면 한민족의 위세도 떨칠수 있으려니와 민족재통합의 기운도 북돋울 것이다. 북한은 귀도 눈도 없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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