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lOC노회서 첫 거론…62년부터 수차례회담… 북한측 비협조로 결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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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7년9월 제53차 IOC총회(불가리아 소피아)=『북한올림픽 위원회(NOC)를 장점적으로 인정하되 올림픽대회는 한국올림픽위원회(KOC)의 동의를 얻어 남북한단일팀으로서만 참가할 것을 조건부로 한다』고 결정.
▲62년6월 제59차 IOC총회(소련모스크바)=64년 동경올림픽대회에 남북한단일팀 출전을 종용.
▲62년8월14일=KOC는 남북한단일팀구성에 동의.
▲63년1윌24일 IOC중재 스위스 로잔회담=국기·국가·임원선수선발등 논의. 이중 국가(1945년이전의 아리랑)만 합의.
▲63년5월17일 동경올림픽단일팀구성 제 1차회담(홍콩)=선수선발을 위한 예선실시(재정은각자부담)에 합의. 호칭·예선실시장소·선수훈련·제반행정절차는 미합의. 한국측 이효외 6명, 북한측 김기수외10명.
▲63년7월26일 제2차 홍콩회담=한국 허위보고·보도와 올림퍽정신위배사실및 한국비방에 대한 공개사과요구. 북한측의 사과거부로 결렬. 한국측 민용직외 7명, 북한측 김기수외6명.
▲72년7월10일=북한올림픽위원회(NOC)위원장 오현주는 올림픽및 세계대회에 단일팀파견을 제의.
▲72년7월13일=남북체육기구들간에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
▲72년7월14일=김택수대한체육회장은 뮌헨올림픽에서 합동응원만을 구성할 용의 있음을 시사.
▲72년9월8일=뮌헨올림픽에서 김택수한국올림픽워원장과 북한오현주NOC위원장은 남북체육교류회담을 서로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도록 상호초청키로 공동성명발표.
▲79년2월20일=북한은 제35회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구성을 위한 판문점회담을 제의.
▲79년2월24일=한국 탁구협회채영철회장이 이 제의에 응하여대표를 판문점에 보낸다고 발표.
▲79년2월27일=제 1 차 회담
▲79년3월 5일=제 2 차 회담
▲79년3월 9일=제 3 차 회담
▲79년3월12일 제4 차 회담=한국은『대회참가 선보장』을 요구. 북한측은『단일팀으로 참가하는 조건하에서 참가보장』을 수락한다고 대응. 다음회담일자를 합의없이 퇴장, 회담 결렬.
▲79년12월20일=북한이 80년모스크바올림픽에 남북한단일팀 구성제의.
▲81년 6월19일=조상호대한체육회장은『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및 82년아시아경기대회등 각종국제대의에 남북한단일팀을 구성하여 파견하자』고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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