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中 대표 무술 영춘권, 계승자 선정 분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소룡·엽문으로 잘 알려진 중국 남방의 대표 무술인 영춘권(詠春拳)이 계승자 선정을 놓고 분란에 빠졌다.

광둥(廣東)성 정부가 영화로 유명한 예원(葉問·엽문)의 아들 예준(葉準·엽준·90)을 제4차 ‘성급 무형 문화유산 대표 계승자’로 지정한다고 예고한 것이 분란의 계기가 됐다. 포산(佛山)시 정부는 지난달 초 예원의 아들인 예준, 예원의 손제자(제자의 제자)인 궈웨이잔(郭偉湛·곽위담), 채리불권(蔡李佛拳)의 량웨이융(梁偉永·양위영) 세 명을 무형유산 계승자로 신청했다.

이에 8월 15일 광둥성 무술협회 영춘권전문위원회, 쩡청(增城)시 영춘권협회, 충화(從化)시 무술협회, 중산샤오란(中山小欖) 영춘권협회 등 9개 단체가 연명으로 광둥성 문화청에 궈웨이잔과 예준의 지정은 “역사와 현실 상황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반대 편지를 제출했다. 이들은 반대 이유로 분파와 거주지를 내세웠다. 영춘권에는 각각 특색을 지닌 여러 분파가 있어 예준이 다른 분파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과, 홍콩 사람인 예준이 영춘권의 본산인 포산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여타 파벌의 반대 의견에 궈웨이잔은 포산시가 자신을 영춘권 계승자로 선정한 것은 여러 차례 선별을 거친 것이며, 여러 무술도장의 자료를 종합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예준의 수제자로 영화 ‘엽문전전(葉問前傳·2010)’의 제작자인 셴궈린은 홍콩 명보에 “(군소 무술협회의 반대는) 매우 가소롭다”며 “예준 사부는 이런 헛된 명예를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셴궈린은 "예준 사부는 항상 그대와 나, 그들을 막론하고 영춘은 모두 한 집안이라고 강조해 왔다"고 설명했다.

셴궈린은 여타 문파들의 반대 논리에 대해 “예준은 일대종사(一代宗師)인 예원의 아들로 해마다 절반을 포산에서 지내며 제자들이 전 중국에 널리 있다. 예준은 또한 세계영춘권연합회를 만들었고, 포산에 예원기념관도 건립했다. 그는 예원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는 등 영춘권의 세계 확산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반박했다.

논란이 일자 광둥성 문화청은 찬성과 반대 의견 모두 전문가들의 심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저우시 남서쪽에 인접한 포산시는 황페이훙(黃飛鴻·황비홍)·예원 등 무림 고수의 본산으로 유명한 도시다. 영춘권은 1970년대를 풍미한 홍콩 스타 리샤오룽(李小龍·이소룡)의 영화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영화 ‘엽문’ 시리즈와 왕자웨이(王家衛·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2013)’로 널리 알려졌다.

영춘권의 역사는 17~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춘권의 역사를 담은 『영춘권원류(詠春拳源流)』에 따르면 청나라 강희(康熙)제 때 조정은 무림을 진압하기 위해 허난(河南) 쑹산(嵩山)의 사오린(少林·소림)에 군대를 파견했다. 이때 쓰촨(四川)성 다량산(大凉山)에서 두부를 팔던 엄이·엄영춘 부녀가 이곳까지 도피해 온 오매사태(五枚師太)를 만나 무술을 전수받았다. 엄이는 이 비급을 사위인 푸젠(福建)성의 소금장수 양박주(梁博?)에게 물려줬다. 양박주는 무술을 전수해 준 부인을 기리기 위해 권법의 이름을 영춘권이라고 지었다. 후에 광둥성 포산시의 명의 양찬(梁贊)에게 전수됐다. 이때부터 영춘권이 포산시에 정착했다.

양찬 이후 진화순(陳華順)·진여면(陳汝棉)·오중소(吳仲素)를 거쳐 1920년~1930년대에 이르러 포산에서 롼치산(阮奇山·완기산)·야오차이(姚才·요재)·예원이 포산의 ‘영춘삼웅(詠春三雄)’으로 활약했다. 그 후 예원이 1950년대 홍콩으로 건너가 널리 문하생을 키웠으며 리샤오룽은 수제자 중 한 명이었다.

신경진 기자 xiaok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