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9)|<제73화>증권시장(67)-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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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는 연행되어 조사를 받은 뒤 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의해 기소되어 보통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범일증권 사장 이태진씨와 최진수씨, 영화증권 사장 석영학씨 등은 민간재판을 받았다.
검찰 부에서는 대전지검 강태훈 부장판사와 서울지검 안경상 검사 등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보통군법회의 검찰관 김 중령의 지휘아래 윤종수 대위와 박 중위로부터 주로 조사를 받았다.
보통군법회의로 넘어가자 나는 성북 경찰서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면회대기실에서 유원식씨를 만났다. 앞으로 어떻게 돼 가느냐고 물었다.
나름대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중형을 받을 것이며 가을이나(63년도)가야 끝날 것 같다면서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중형이라면 무기징역 이상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후 유원식씨는 병 보석으로 풀려나갔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은 천병규 전 재무부장관, 권병호 전 농협부회장, 강성원씨, 그리고 나 등 네 사람뿐이었다.
서울구치소에 있으면서 재판을 받는 사이 나는 당시 반혁명 사건으로 구속된 K씨와 P씨 등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K씨는 재정경제위원장으로 있을 때 5월 파동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미흡하지 않느냐고 주장하기도 했었던 분이다.
K씨는 자기 때문에 고생을 하게된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K씨는 독실한 천추교 신자였다.
P씨는 재판을 받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났다. 곧 나갈 것 같지 않다며 가족들의 생계걱정을 했다.
나는 돈이 있으면 가족들에게 증금주를 사두시도록 하라고 P씨에게 권했다.
독방에 있던 나는 교도관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하루 걸려서 신문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주가를 알고 있었다.
내가 구속된 후 5백원 짜리 증금주는 78원까지 하락했다.
7월초 내가 석방될 때쯤엔 5백80원까지 뛰어 올랐다.
윤응상이는 형무소 안에서도 주가를 올리는 재주를 가졌느냐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하튼 다음날 재판을 받다가 휴정 중에 화장실을 갔다오는데 한 여자가 윤 선생님이 증금주를 사라고 해서 사 갖고 왔다며 나에게 소리쳤다.
이영호씨 부인이었다. P씨에게 얘기한 것이 엉뚱하게 이씨 부인의 귀에 들어갔으니 참 빠르기도 했다.
정작 P씨가 증금주를 샀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석방 후에도 P씨를 만나보지를 못했고 건강하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다.
군법회의 재판에 회부되자 각 증권회사와 방계회사에서 한명씩을 선임하여 11명의 변호사가 선임됐다.
또 안사람이 따로 김치열씨를 변호사로 선임하여 모두 12명이 됐다.
나는 면회 온 가족들에게 말하여 안준기 변호사 한 사람만 남겨두도록 했다.
공판은 매일같이 진행됐다. 그러던 중 6월말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내가 구속 된데 상심하여 부산의 누이동생 집에 가셨다가 그만 운명하셨다는 것이었다.
10년 이상은 더 사실 수 있었을 터인데 나의 구속으로 큰 충격을 받으신 것이다. 어머님은 황해도 해주에서 월남을 못하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쭉 혼자서 사셨다.
임시귀가를 요청했으나 법무사 최영항 대령은 멀지않아 재판이 있을 터이니 참아달라고 했다. 나에게 징역7년을 구형하는 등 구형공판이 있은 뒤 6월27일에 판결공판이 있었다. 박형동 재판장은 피고인석을 내려다보며 엄숙한 표정으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애국적 행위를 했다는 내용의 판결 전문을 읽은 다음 피고전원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민간재판에 회부된 증권거래소이사·증권회사사장들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나는 지금도 5윌 파동과 관련되어 나와 같이 조사를 받았던 사람에 대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나로 인해 4개월 여 동안 옥고를 치른 것 같아서 오늘까지 마음에 부담을 느끼고있다. 무죄석방 된 뒤 강성원씨는 공화당사무차장으로 일하게 됐고 정지원씨는 가족들과 같이 캐나다로 가서 신학대학을 나온 뒤 목사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서재식 거래소 이사장은 석방 후 부산은행장과 동서증권 사장을 거쳐 한국나쇼날프라스틱의 사장으로 있다.
나와 함께 조사를 받았던 분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빌고 있다. <계속> 【윤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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