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년생 시절-박성상(중소기업 은행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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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l941년 초여름의 일이다.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당시 조선은행에 취직시험을 보라고 권유했다. 이것이 나의 인생을 지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늘 생각한다.
상업고등학교 출신이던 나는 일본인 동료가운데 대학을 나온 사람이나 또는 한국사람 선배 중 전문학교 이상 출신자들에 대한 은행의 대우가 달랐던 점, 그리고 학식이 있는 자와 상고 출신으로 출세를 포기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차이 등에서 공부를 더해야 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섰고, 이러한 주변환경은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게 되었다.
특히 영어를 하는 사람이 부럽기 짝이 없고 출입하는 미군병사와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다. 그래서 한때 영어학원에 드나들게 되었고 이것이 주경야독의 습성을 붙이게된 첫걸음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따금 미군 병사가 은행창구에 나타나면 영어로 말을 건네 보는 것이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쁨으로 변하곤 했다.
동료행원이 대학 나온 까닭에 먼저 지점장 대리가 되어 나의 상사가 되었을 때는 슬픔이 가슴을 죄어 매는 듯 했다. 그래서 청구대학과 국민대학 야간부에 입학을 했다.
맡은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성취의욕이 인정되었던지 미국에 AID 훈련기회를 갖게된 것이고 통계훈련을 위한 강의를 받은 다음에는 또 아메리컨 대학의 야간 청강생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학점을 딴 것이 미국 유학의 계기가 되었다.
귀국해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안 작성의 공적을 인정받아 도미유학의 장학금을 얻게 된 것이라고 본다면 주경야독이야말로 나의 인생을 지배한 철학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후배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주경을 소홀히 하고 야독만 한다는 사고방식은 맡은 일은 소홀히 한 채 자기공부만 하려 하는 이기주의에 흐를 가능성이 있고 주경만 열심히 하고 야독을 소홀히 해서는 자기 개발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일본의 덕천가경은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초년생 시절부터 장년시절과 노년시절에 이르기까지 끈기 있게 주경야독을 계속하는 것이 자기 인생에 보람을 느끼는 길고 즐거운 인생항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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