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새삼 일깨워 줘"|막 내린 국풍81…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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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풍81」축제가 끝났다. 관계당국은 앞으로 국풍 행사를 연례행사로, 「우리의 축제」로 계속 발전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닷새동안 열기를 뿜었던 「국풍81」의 여운을 취재기자 들의 방담으로 마무리 지어본다.
-행사자체가 근래에 보기 힘들 정도로 대규모였던 만큼 뒷 얘기도 풍성할 것 같은데 우선 인파는 얼마나 모였습니까.

<연인원 천4백여만명>
-행사본부와 경찰 측은 첫날인 28일에 80만, 29일 90만, 30일 1백만, 31일 1백20만, 마지막날인 6월1일은 80만으로 추산하더군요. 여의도 광장이 16만평이니까 피크 때는 평당 6∼8명이 득실거렸다는 얘기죠.
-행사본부 측도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릴 줄은 예상하지 않았다고 실토했습니다. 그 어때 보다도 활발한 홍보활동도 있었지만 그 동안 우리국민이 축제다운 축제, 구경다운 구경에 굶주려 왔음을 입증했다고나 할까요.
-몇번 보슬비가 내린 외에는 날씨가 계속 맑았던 것도 국풍으로선 다행한 일이지요.
진행 본부의 한 간부는 행사기간 내내 조마조마했었다고 털어놓더군요. 남부지방에선 비가 안와 걱정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이러니컬한 느낌도 드는데….
-그래서 마지막날 하오 5시에는 무당 김금화씨 등 황해도 대택굿팀 등 30여명이 중심이 돼 기우제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국풍 축제 중 줄다리기는 일품이었습니다. 3백m나 되는 줄을 제작하는 데만 20일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정말 우리 고유의 놀이를 재현한 셈이지요.
-시조백일장도 좋았습니다. 겨레의 시 찾기 운동이 한창인 이 때 장원한 대학생이 머리에는 어사화를 꽂은 채 조랑말을 타고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은 「장원급제」 바로 그것이었다고나 할까요.
-씨름·그네뛰기도 흥겨운 잔치종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팔씨름판도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관객들 중에는 그야말로 「우리 것」이 벌어지는 무대만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뭏든 이번 축제는 민족문화의 자각을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구경꾼의 홍수 속에서 취재상의 애로도 적지 않았을 텐데….
-한 공연장에서 다른 공연장으로 가는데만 20여분이 걸리는가 하면 팔도 미락정에는 끝내 들어가 맛을 보지 못했습니다.

<워낙 모자랐던 시설물>
-팔도 미락정은 현지에 가야 맛볼 수 있는 우리 고유음식을 한자리에 모아놓아 대단한 인기였죠. 그러나 전주 비빔밥 같은 경우 진짜 전주의 명물이 아닌 서울시내 영업집을 옮겨다놓은 것이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음식값도 비싼 것이 많아 최고 인기였던 부산 산성 막걸리는 현지에서 한되에 1천3백원에 팔리는 것이 2천원씩 받더군요.
-인파가 많았던 만큼 무질서와 바가지 상혼도 판을 쳤습니다. 영등포구청 청소과 직원 5백여명이 행사기간 중 매일 상오 6시부터 3시간 동안 광장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느라 곤욕을 치렀지요.
-그러나 관람객들만 나무랄 수도 없다고 봅니다. 워낙 시설이 모자랐으니까요. 어쨌든 우리 시민정신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반성하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객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이 행사를 취재하며 여러번 느꼈습니다. 객이 되어야할 팔도 명산물 시장과 팔도 미락정이 가장 인기를 모았고 이 행사의 주체가 되어야할 대학생보다 노인 층이 인파의 주류를 이루는 등….

<연극제엔 새것 드물어>
-시조백일장의 장원들이 벌이는 유가 행렬이 KBS측의 녹화준비관계로 1시간씩 미뤄진 것도 그 예라 하겠지요.
주최측의 입장만 생각해 몇 천명의 관객을 기다리게 한 것은 한마디로 본말의 전도입니다.
-많은 대학과 다양한 서클을 유치하는 데만 급급해 정작 「이거다」싶은 게 없었던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연극제의 경우 일부는 기성극단의 재탕 삼탕이 있었고 학생 창작극은 드물었다는 점입니다.
-이번 행사로 가장 큰 재미를 본 사람들이 바로 서울시내의 노점상·리어카상 등 잡상인 들이었다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잡상인의 숫자가 늘어났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어떤 잡상인도 내쫓는 법이 없어 그야말로 노점상들의 천국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였습니다.
-그 동안 보기 힘들었던 약장수·번데기 장수·야바위꾼들도 심심치않게 보여 그 자체로 좋은 구경이 되기도 했는데 엉터리의 약품을 아무 규제 없이 팔게 한 것은 너무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었습니까.
-행사본부 측은 하루 매상액이 약20억에 달할 것으로 보더군요. 한달 수익을 이번 행사기 간 중에 다 벌었다는 행상도 많았습니다.
-대학생 아르바이트도 예상외의 수익을 올렸다던데요. 화장품·신발류를 취급한 모 여대바자의 경우 하루 8백만원의 수익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행사에 대한 정부축의 배려도 상당했던 것 같은데….
-행사개막 전날인 28일 대통령이 직접 행사장을 돌아본 것을 비롯, 문교·문공·내무장관 등이 여의도에 들르는 등 큰 관심을 보였지요.
-이번 행사를 위해 동원된 3천여명의 경찰관의 노고도 컸습니다. 닷새동안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으니까요.
-그 동안 여러 면에서 불편을 겪은 여의도 주민들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KBS 측은 이들을 위해 새벽장을 개설했죠. 이원홍 KBS 사장은 인사장과 행사안내 팸플릿도 몰려 양해를 구했다더군요.

<농번기 행사 피해야>
-행사본부에서는 이번 행사를 놓고 몇가지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판단, 내년에도 이런 행사를 마련하기로 했다더군요.
-이번 행사의 타이틀이 전국대학생 민속·국학 큰 잔치였음에도 학구적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던 점, 정각 대학생의 참여가 많지 앉았던 점은 아쉬웠습니다.
-행사 시기를 농번기로 잡은 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추수가 끝난 가을철이 더 적당할 것 같습니다.
-행사본부 측에서도 내년에는 축제의 시기·내용·진행·시설 등을 각계의 의견을 들어 결정, 내실을 기하겠다는 얘기였습니다.
-큰잔치 끝에는 말이 좀 있게 마련이지요. 어쨌든 이번 행사가 축제다운 축제를 보지 못했던 국민들에게 잔치분위기를 맛보게 해준 것은 사실이고 온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축제가 1년에 한번쯤은 필요한 것도 여러 사람의 소망인 만큼 내년에는 완벽한 「작품」을 보게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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