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세계와 호흡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흔히들 예술적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표현을 위한 기술을 먼저 익혀야 한다는 데는 동감이다. 이를테면 화가가 데생의 능력을 갖춘다든지, 연주가가 연주능력을 갖추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해야한다 든가…그러나 이러한 수련으로서의 과정이 아니라 예술적 창조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식의 순서를 내세우는데 나는 반대다.
화가는 처음에 사실을 거쳐 구상과 추상으로 넘어가야 한다느니 전위적인 연극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주의 연극을 거친 연후라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이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창조적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한국적 고정관념의 하나가 아닌가한다.
우리 극단에서「이오네스코」나「베케트」의 작품을 레퍼터리로 정했을 때「스타니슬라프스키」의 리어리즘 연극론부터 제대로 소화한 연후에 그런 것을 해야한다는 비관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른바「스타니슬라프스키」를 우리의 연극계에 도입하고 우리의 것으로 소화한다는데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연극론이자·연기론으로서 피상적으로만 내세울게 아니라 우리의 극계에 보다 철저히 소개되고 소화되었으면 한다.
다만 나는「스타니슬라프스키」를 마스터한 연후에「브페히트」를 연구하고 그 연후「알토」류의 전위적인 연극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순서론, 마치 수험생이 입시공부를 하듯 순서적으로 서구 연극을 받아들여야한다는 도식적 사고방식에 반대하는 것이다.
순서적으로 체계적으로 질서정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효율적인 분야도 있을 것이다.
학문이나 기술, 과학은 그러한 순서가 존중돼야할지 모른다. 그러나 예술은 순서만 따지고 따라가다가는 영원히 뒤지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술적 창조는 그만큼 오늘이 순간이 문제가 되는 것이며 세계와 호흡을 같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연극과 영화와 같은 그 시대의 생활감각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공연예술은 그러한 동시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의 영화나 연극은 그러한 동시대성을 상실하고 언제나 허둥지둥 뒤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세계의 유명한 영화제에서 수상한 화제의 양화도 우리에게는 아예 소개되지 않거나 몇 년이 지나서 소개되며 연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이점 약삭빠르다. 세계의 화제작들이 화제가 일어남과 동시에 무대와 스크린에 소개되는 것이다. 그것을 약삭빠르다고 나무랄 수 있을 것인가?
김정옥<연극연출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