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간에 「인간적 만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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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선생님 하면 난 으례 국민학교 1학년에 담임선생님을 생각하게 된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서글서글한 선생님이었다.
갓 학교에 들어가서 인상이 강했을 탓도 있었겠지만 수업의 이 장면 저 장면이 선생님의 회상과 더불어 떠오른다.
무엇보다 강한 추억은 학예회에 출연할 무용을 가르쳐주신 일이다.
나와 또 한 아이를 골라 말하자면 듀엣 무용을 아마 근한달 방과후에 손잡고 가르쳐주셨다…야단도 치고 칭찬도 하고 위로도 하시면서.
프로가 끝나자 아주 잘했다고 꼭 안아주시던 생각…어린 마음에 더 없이 흐뭇했다.
그후 세번이나 국민학교를 전학하게 되었고 지금은 이북땅이라 불민하게도 그 선생님의 성함도 기억 못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선생님인데 성함을 기억 못하니 가끔 죄스러운 안타까움을 느낀다.
사제지간에는 어떤 인간적 에피소드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저 한사람과 여럿이 모여 평면적으로만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일만 아니라, 사제간 개인과 개인의 인간적인 만남의 입체가 필요할 것 같다. 개인과 집단자체는 여간해서는 잘「만나지」못한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경우도 그렇다. 그분은 좀 무서운 엄격한 분이었다. 그러나 체조 시간이면 철봉이나 뜀틀 옆에서 다칠세라 일일이 지켜보고 순간적으로 부축해 주고 하시던 생각이 난다. 더구나 나에겐 저녁에 과외교사 노릇까지 해주셨다. 좀 어렵다는 중학에 지망시켜 마음이 안놓이셨던 모양이다. 저녁엔 집에 와서 공부하자고 하셔서 얼맛동안 저녁마다 선생님댁에 갔다. 공부도 하고 군밤도 먹고 이야기도 듣고….지금 생각하면 이 모두가 완전무보수였다. 이 때문에 난 오랫동안 돈 받으면서 가정교사·과외교사를 한다는 일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분은 일본인이었다. 해방이 되어 일본으로 귀국하신 다음엔 그분의 종적을 몰랐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소식을 들었다. 그때 동기생 친구 한사람이 해방 후 일본에 건너가서 얼마 있다가 사업에 대성하여 그 선생님의 노후는 물론 가족들까지도 돌봐드렸다는 것이다. 동기생 한사람이 대표해서 옛 스승을 지극히 대접했다니 그래도 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사제간에는 사제관계 이전에 우선 인간적 만남이 있고, 그 다음에 잘 가르치고 잘 배우고 하는 관계가 깃들이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스승·교수는 본래 그런 인간적 만남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 택하는 직업이며, 교육은 본래 그런 인간적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내 대학시절은 해방직후여서 사회도 대학 내도 그저 어수선한 세월만 보낸 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 선생님을 강의시간 이외에도 좀더 가까이 뵙고 가르침을 받지 못했던가 후회된다. 대학에서는 특히 명강 하시는 분에게 끌리게 마련이나 그러면서도 인간적 만남이 있다면 제자 된 심정. 스승 된 심정을 더 간절하게 한다.
미국에서 대학원시절에 그야말로 자상하게 손잡고 가르쳐 주신 선생님을 얼마 전에 한국에 모실 기회가 있었다. 국제적으로 꽤 유명한 분이다. 역시 그분의 제자인 몇사람이 같이 강연·심포지엄도 하시게 하고 몇학교 몇명로도 구경시켜 드렸다.
김포공항에서 떠나실 때 『한국은 스승의 천국일세』하며 눈물마저 글썽이셨다. 우리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 해드리고 싶은 것을 해드렸을 뿐인데, 아마도 그분께서는 미국에서도 어디에서도 한국에서만큼 스승 대접을 받으신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걱정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기실 나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한국엔 사제지도 사제지석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고 본다. 특수상황을 빼놓고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의 개인과 개인간, 사제지도 사제지정은 건재하고 있다.
교사가 마음놓고 걱정 없이 잘 가르칠 수 있고 학생이 마음놓고 서슴없이 잘 배울 수 있어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호기대가 더 만족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더 퍼진다면 더욱 건재할 수 있다. 일일이 개인적인 인간적 만남을 짓기 어려울만큼 많은 대인수 학급은 옛날 서당의 소인수 학급보다는 사제지정이 싹트기에는 퍽 불리하다. 교사의 경제적 사회적 대우가 수군이하라면 이 또한 퍽 불리하다. 그래도 이렇듯 사제지정을 볼 수 있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기특하다.
나도 오래 대학교수였으니 스승이었던 셈이다. 「제자」되는 사람도 많다. 대학은 제자라기보다는「동료」를 길러내는 곳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래도 그 동료·제자들이 인간적으로 충실하고 사회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없이 흐뭇하다. 아마도 모든 스승이 제자에게 바라는 가장 큰 보은은 이런 「충실」과「활약」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 뇌리에는 그들과 씨름하던 교실·연구실에서의 일들이 소중한 보배처럼 남아 있다. 그것은 국민학교 1학년에 손잡고 무용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기억. 군밤 구워 주시면서 과외지도 해 주시던 6학년 담임선생님의 기억과 더불어, 자리를 바꾼 제자의 정, 스승의 정이 같은 인간적 만남으로 이어짐을 느끼게 한다. 그 속에 사제지도도 자리잡으려니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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