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속의 사채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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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분시장이 부황이다. 돈이 안팔리는 것이다. 『10여년간 사상알선을 해왔지만 요즘같은 일은 처음 당합니다.』 지난해 한때 월4%선을 깨뜨렸던 사상금리가 최근들 절반가까이 까지 떨어졌는데도 돈벌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업들이 쓰면 빚도 은행대출로 갚아오는 바람에 사채시장의 돈은 더욱 남아돈다. 금리도 떨어지고 거래규모도 대폭 줄고, 그렇다면 이런식으로 사상시장이 없어져가고 있다는 뜻인가. 사채시장을 점검해 보자. 관계당국이 추정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상시장규모는 줄잡아 약8천억원정도.
이 많은 돈이 사채업자들의 장롱속에서 들락거리는 것은 아니다. 한참 경기가 좋았을때는 기업들이 줄을 서서 려어갔지만 요즘 같으면 단자회사나 은행구좌에서 때를 기다린다.
워낙 뭉치돈이라 이들이 한번 움직이면 단숨에 은행예금이 줄고 늘고 한다.
돈 빌겠다는 사람이 없을때는 조용히 은행금리를 따먹다가 증권시장으로 풀려 한바탕 휘젓는가 하면 부동산투기에 불을 붙이기도 한다.
자라목처럼 철저한 은폐속에서 전주와 전문사채업자등의 관계는 당사자의 얼굴밖에 모르는 점조직으로 짜여있다.
종주가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큰돈의 경우 대부분 종주는 숨고 0· 2∼0·5%의 커미션을 받는 중간브로커를 거쳐 거래가 이루어진다.
얼굴없은 전주들의 신분은 전직고관에서부터 시작해 청계천철물점주인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 그들이 누구이건 알바없다는 사채브로커들은 거래 기업체의 신용상태만은 속속들이 꿰뚫고있다.
대은항들이 대차대조표를 가지고 기업신용을 따진다면 이들은 사람의 성품까지 훤히 파악하는 치밀한 정보망을 지니고 있다.
믿기지 않던 화신부도도 부도나기 열흘전에 이미 알려져 일찌감치 챙긴 뒤였다.
은행이 거래기업들에게 우량업체를 골라 대출금리를 0·5% 싸게 해주듯이 이들도 독자적인 정보를 토대로 A·B·C의 3등급으로 나눠 차등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C급의 경우는 위험부담이 많다는 이유로 월5%의 고리를v물린다.
C급을 주로 상대하는 곳은 평화시장과 남대문시장 주변의 영세 사채업자들 전형적인 고리대금업자인 이들은 지난해 한계기업들의 무더기 도산으로 기백억원을 날렸다. 금년들어서는 C급기업의 어음할인은 아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A급기업들에게는 군말없이 차용증서 한장으로 거액을 빌려주지만 신용상태에 약간만 흉이 생겨도 철저하게 담보를 챙긴다.
한루만 날자를 어겨도 담보된 집을 가차없이 넘겨버리는「샤일록」 들도 적지 않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만 하면 일제히 어음을 돌려 부도한날 회사가 하루아침에 도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급할때는 사가시장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다. 은행문턱이 구조적으로 높은 형편에서는 아무리 미워도 사채시장은 기업의 급전조달 창구노릇을 단단히 해온 것이다.
그래서 재무구조가 튼튼하다는 대기업들도 조금씩은 사채를 쓰고 있다. 당장 필요해서가 아니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길을 터놓고 있자는 계산에서다.
72년 8·3조치 당시의 사채규모는 3천5억원. 그동안 2배이상으로 불어났으나 경제규모에 비하면 오히려 3분의l 정도로 줄어든 샘이다.
당국이 여러차례 없애겠다고 칼을 뽑아들었지만 힘으로 어쩔수 없는것이 사채시장이다.
바로 버섯과 같은 것이다.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는 음지인한 버섯은 아무리 베어도 다시 생겨나게 마련이다.
햇볕이 쬐지면 자연히 없어지는 것이 버섯이고 독버섯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몸에 좋은양분을 재공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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