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터키 신문간부 죽인후 국외로 탈출한 과격파|교황저격한「메메트·알리·아그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교황경호문제>
교황은 사람들과 섞이기를 좋아하는 데다 신변보호마저 매우 허술해 암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겐 손쉬운 표적이라고 보안전문가들이 분석했다.
교황은 해외여행을 할때는 방문국측의 삼엄한 경호를 받지만 정작 이탈리아 국내에서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직무상 로마일대의 각교구를 방문하거나 미사를 정기적으로 집전하는등 대중앞에 나서는 때가 많은데도 별다른 경호대책은 없다.
13일 그가 저격됐을 때에도 측근엔 단 한사람의 경호원 바티칸 보안대장「카밀로·치빈」 만이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스위스 위병들은 무기라곤 전통적인 참(회)만을 지니고 있으며 권총을 지닌 보안요원들은 부근에 하나도 없었다.
접견이나 미사에 참석하는 신도나 관광객들도 광장에 들어을 때 아무런 검사도 받지 않는다.
바티칸의 치안담당 병력은 모두 1백50명 가량 이중 90명은 1505년 창설됐다. 스위스의 카톨릭지역에서만 충원하는 위병이며 정작 무장하고 경호를 맡는 보안요원은 50명 미만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이탈리아 경찰관 출신이다. 이들도 하는 일이 대부분은 교황을 들러싸는 군중들을 막는 정도다.
교황이 해외여행을 할때는 1백92cm 인의 거구인 미국인 대주교이며 바티칸은 행장 「폴·C·마르친쿠스」가 보디가드역할로 수행하지만 바티칸 안에서는 경호에 관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경찰은 그가 밖으로 나을때는 경찰차와 모터사이클로 에스코트 하지만 일단 차가 멈추고 교황이 내리면 속수무책이다.

<범인의 주변>
교황 「요한·바오로」2세를 저격한 「메메트·알리·아그카」(23) 는 터키의 우익테러리스트로 알려졌다. 58년1월9일생인 그는 체포후 자신이 로마북부에있는 페루지아의 외국인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으나 페루지아대에서는 그같은 이름의 학생은 없다고 밝혔다. 「아그카」 는 체포후 『내목숨은 전혀 아깝지 않다』 는 말을 거듭 뇌었다고 경찰소식통이 전했다.
경찰은 그가 사용한 총이 9mm구경의 것이며 5발을 발사한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아그카」 는 이탈리아에 오기전 터키에서 을쿠클러라는 우익과격파청년단체에 가담한 후 지난79년 2월1일 터키의 신문 밀리에트지의 좌익중도파 편집국장 「압디·이페크시」 를 살해했다.
이 사건직후 체포된 그는 경찰심문에서 『나는 어떤 불법 단체원도 아니다. 그를 죽인것은 우리를 착취하고있는 계층에 대한 반항이지 반정부 의도는 없다』 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스라엘과 미·소총영사들을 살해하고 터키의 재계거물들을 암살할 계획도 세워놓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79년10월에 법정에 섰을때는 범행동기가 단지 테러리즘을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하는가하면 10월24일에는 「이페크시」를 죽인 범인이 자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등 엇갈린 말을 해 재판이 12윌5일로 연기됐었다.
그러나 이 재판이 열리기 전인 11월 그는 복역중이던 군형무소를 탈출 국외로 피신했다.
그는 탈옥직후 밀리예트지등 각사들에 『오는 11월28일 터키를 방문케 돼있는 교황을 죽이겠다』 는 요지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서방측은 터키와 아랍형제국들이 중동에 새로운 정치·경제·군사적 세력권을 형성하는것이 두려워「요한·바오로」2세를 종교지도자라는 허울아래 십자군으로 파견했다. 아무 의미도 없는 방문이 취소되지 않으면 나는 교황을 죽이고 말겠다.
내가 탈옥한것은 오로지이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배후조종한 메카사건에 대해 누군가가 댓가를 치려야 한다』 고 썼었다.
메카사건이란 79년「아그카」의 탈옥직전에 일어난 회교과격분자들의 메카 회교 모스크 점령사건을 말한다. 그러나 교황의 터키방문은 아무런 사고없이 이뤄졌었다.
터키보안당국은 당시「아그카」의 교황 살해 위협이 있은 후 교황에 대한 신변경호를 일층 강화했었다.
터키보안당국은「아그카」가 이스탄불 감옥을 탈출한 후 어떤 경로로 터키를 빠져나갔는지 알수없다고 말했으나 터키신문들은 2∼3주전「아그카」가 이란국내의 혼란을 틈타 이란으로 잠시 도피했다가 위조여권을 이용, 유럽으로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당국은 「아그카」가 이스탄불 감옥에서 용이하게 탈출할수 있었던 것은 우익동조자였던 감옥교도관들의 도움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아그카」 는 유럽으로 탈출한후 서독여인과 결혼, 서독에서 거주해 왔으며 터키당국이 이를 인도해 주도록 요청했으나 서독이 이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경찰은 「아그카」를 체포하기위해 수개월동안 수색전을 폈으나 허사였으며「아그카」는 탈출후 「아브디· 이팩치」살해 혐의로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아그카」가 소속해 있는 우익과격파 청년단체「을크클러」는 극단적 민주주의 단체인 인민운동당과 제휴하고 있으며 인민운동당 당수 「알패슬란」과 고위당직자들은 연재 국가전복 기도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해있다.
한편 터키의 국가원수「케난·에브렌」 장군은 교황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교황의 피격 사실에 슬픔을 억제할수없은 심정입니다. 이같은 비인간적 행위를 터키 국민들과 함께 규탄하는 바입니다. 부디 쾌유하시길 기원합니다』 고 말했다.
한편 「일란·오즈트라크」터키부외상은 이날 아카잔스통신과의 의견에서 터키정부는 이미 수개월전「아그카」의 해외에서의 테러행위 가능성을 인터폴 (국제경찰기구)에 통고한바 있다고 말했다.
터키경찰도 보름전인 4윌말에「아그카」가 로마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탈리아 경찰에 위험인물임을 경고했다고 밝혔다.
「아그카」는 또아르메니아의 반터키 지하단체에 가입해 있는것으로 알려졌는데 아르메니아 지하단체는 제1차세계대전때 터키에서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사건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키기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최근 수년간 주로 터키 외교관을 겨냥한 일련의 테러행위를 감행해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