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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8>제73화 증권시장<제자=필자>(46)-강성진|주식공모 업무주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삼보증권은 기업공개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이처럼 부지런히 뛴 덕분에 남달리 많은 공모업무를 주선했다.
한때는 기업공개에 대한 주선업무는 삼보의 독점 물인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할 정도였다.
이처럼 우리회사가 공모주선업무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을 무렵이다.
당시 재무장관이 삼보가 증권회사로서는 처음으로 주간사회사가 되어 기업의 공개주선을 했는데 재무제표의 분석 등 투자공모에 비해 하등 손색이 없다는 보고에『대단히 소망스럽고 반가운 일』이라며 기뻐했다는 말을 후에 들었다.
증권회사가 기업공개를 추진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당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눈 여겨 봤던 것이다. 70년대의 신주공모나 구주매출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청약비율이 2백대1이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복부인들이 몰려든 아파트 청약에 비할 경도가 아니었다. 이처럼 인기가 높아지자 2중 청약 등 과열청약 현상의 폐단이 생겨났다.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당국은 청약제도를 빈번히 바꾸었다.
처음에는 무제한으로 청약신청을 받아 청약 주 수에 따라 안분 비례로 나누었다.
그후에는 신청 때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거나 증권회사에 등록하도록 했다.
또 청약저축 자에게 우선 배정 권이 주어지기도 했고 청약예금 가입자·우리사주조합·특 수저축자 등에게만 배정하고 일반청약은 폐지하기도 했다.
70년대 청약제도가 이렇게 빈번히 바뀐 것은 우리 나라 증권 발행시장이 그 만큼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삼보는 크게는 주식인구의 저변 확대와 작게는 고객의 층을 넓히기 위해 증권저축에도 남달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인식이 얕은 탓도 있어 크게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단자는 또 회사업무 영역을 넓히면서 지점설치에 역점을 두었다.
70년대 초에 기관투자가들이 세운 증권회사가 부산지점을 설치했으나 개점 휴업상태였다.
증권회사는 명동에 본점만 둔 채 지점은 하나도 없는 거의 황무지 상태였다.
증권업도 하나의 서비스업인데 지점 하나 없다는 것은 말이 될 수 없었다.
일반인들이 증권투자를 하려면 명동까지 나와야하고 그나마 지방사람은 증권투자의 길이 거의 막혀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자기생활 환경에서 몇백m만가도 은행지점이나 예금취급소가 있는 것과는 비교 될 수 없었다.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는 물론이고 증권회사자체도 영업이 잘 될 리 없었다.
나는 서울은 물론 지방에 지점망을 갖추기로 했다.
73년4월 동대문시장근처 건물에 「삼보증권 동대문출장소」란 간판을 걸었다.
서울에서의 첫 지점이어서 인지 개점식 날에는 많은 하객들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동대문출장소의 개설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대구에도 지점을 설치했다. 당시 지점설치는 상당한 희생을 각오해야만 했다. 증권회사의 지점업무는 개점과 동시에 예금을 받아들이는 은행 지점과는 성격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투자자에게 증권지식을 알리고 이해시키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또 증권상품도 문제였다. 지점에서 취급하는 국공채나 공사채는 종류가 많지 않았고 단지 주식 한가지만 상품으로 취급했다.(취급상품의 다양화는 현재도 여전히 검토가 필요한 문제로 남아있다)
때문에 사내에서도 지점설치를 재고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필자는 앞을 보고 밀고 나갔다.
개점후 1년 가까이 되니 흑자를 기록했다. 처음으로 지방지점에도 직통전화를 가설하고 시황 방송도 직접 내보냈다.
지점설치를 주저하던 동업사들도 자신감을 갖고 다투어 지점을 설치했다.
필자는 또 자본의 대형화와 기업공개도 가장 먼저 시도하여 75년9월에 단행했다.
정부의 강력한 기업공개정책의 일환으로 각 대상기업체를 들며 기업공개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필자로서 스스로 경영하는 의사를 폐쇄상태로 놓아둔다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용환 재무장관의 적극적인 뒷받침으로 설립했다.
우리 나라는 80년대 후반에는 선진국 대열에 가까이 서게 될 것이며 증권시장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현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지점망이 그때는 더욱 확대되어 주식의 대중화와 함께 지점간판이 군청소재지에서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독자의 용서를 빌며 삼보의 업무와 관련된 한 두 가지 자랑을 할까한다.
필자와 삼보는 고객들의 성원덕택으로 지금은 폐지됐지만 증권거래소 연말대내회 때엔 계속해서 거래실적 최우수상을 받았다. 특히 73년에는 증권업자로서는 처음으로 저축의 날 행사때 대통령공로표창을 받기도 했다. 뜻 깊은 날이었다.
물론 그 자람은 단자의 것이라기보다는 열심히 뛰어준 임직원의 공이요, 우리를 힘차게 밀어준 고객들의 고마움으로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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