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28세의 김진화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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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왜 이렇게 병도 안나고 오래 사는지 나도 모르겠어.』
한국의 최고령자 김진화 할머니. 1백28세. 귀가 좀 어두운데다 치아가 없지만 무엇이든 잘 들고 잔병치레 없이 정정한 모습으로 걸어다닌다.
김할머니는 경제기획원의 인구센서스 결과에도 국내 최고령으로 밝혀져 공인받은 최고장수 할머니다.
『우리 고향은 함경도 산골인 영흥군 선흥면이여. 산골 중에도 산골이지. 거기서는 움직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별 보고 나와서 별 보고 집에 들어갔지.』
김할머니는 산비탈 화전에 수수·옥수수 등을 부쳐 먹으려면 하루도 빠짐없이 밭일을 해야 했다면서 1백년 전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는 듯 말을 더듬는다.
『원래 몸이 좋았는지도 모르지만 아기 낳고 바로 이튿날부터 밭에 나가 일도 해봤어.』
그렇게 낳은 7남매는 모두 북쪽에 두고 왔다.
자기는 평생 막일을 하면서 늙었다는 것이 김할머니의 말이다. 지금도 그는 아직 학교에 안다니는 어린 조카 손자를 도맡아 보아주고 있다.
산골에서 김할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야생동물의 고기와 약초.
토끼·노루·멧돼지 등 지금은 접할 수 없는 육류를 싫도록 먹었다고 했다.
『어느 해 눈이 많이 온 겨울에는 하루에 멧돼지를 10여마리나 잡기도 했어. 고기덩이를 처마에 매달아 두고 겨우내 먹기도 했지.』
김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조카 이현옥씨(43)는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 고기를 좋아하시는데 충분히 못 해드리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우리집에서 또 약초도 많이 키웠지. 무슨 약초인지 이름은 잊었지만 양식과 많이 바꿔 먹었어.』
이씨에 따르면 영흥에서는 당귀·강활·만삼(만삼) 등 한약제를 전문으로 재배해 팔았다는 소리를 어려서 들었다고 했다.
영흥에서 김할머니가 이사한 곳은 원산 근처. 거기서 20여년을 살면서 싱싱한 생선도 즐겨했다는 것.
『그때 배추김치를 바닷물에 절여 담가먹기도 했었지.』
요즘은 푸성귀에 밥 한 그릇이지만 세 때를 거르지 않고 잘 들고, 소화도 잘 된다는 김할머니는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이제는 조용히 눈을 감고, 가만히 하느님이 불러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어.』
신문지로 도배한 김할머니의 단간방에는 동네 교회에서 걸어놓은 십자가만 컴컴한 방 가운데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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