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부모와 자녀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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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다시 한번 가정의 화목을 생각케 하는 달이다.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야 하는 가정은 가족구성원들의 진지한 대화를 보다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오늘의 가정에는 이해를 위한 대화가 부족하다. 급변하는 시대의 엄청난 세대격차가 대화의 문을 좀처럼 열려하지 않는다.
가족을 이해와 사랑으로 이끌 수 있는 어버이와 자녀의 대화, 「어머니께 드리는 글」과 「딸에게 주는 글」을 싣는다.

<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겉만의 아름다움은 향기 없는 꽃과 같은 것|한 가정의 행복은 주부가 좌우|남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마음 갖도록
신록의 5월
그리고 너 말희의 결혼을 3, 4일 앞두고 가정·가족·혈연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너 말희를 낳았을 때 엄마·아빠는 그만 낳자는 뜻에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고, 또 딸을 낳자 생각 끝에 종희라고 지었지. 너희들이 자라서 한자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 너희들은 『낳기 싫은 딸을 낳았다』고 공박을 하곤 했지.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희들 딸 넷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인지 헤아릴 길이 없구나.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내외가 함께 이른 새벽부터 시장에서 물건을 받아다가 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부부가 있다. 세상이 부러워할 만큼 금실 좋은 그들은 슬하에 딸만 열을 두었는데 모두 병치레 하나 하지 않고 잘 커가고 있다. 아들을 하나라도 두어야겠다는 집념으로 계속 낳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기야 딸이란 곱게 키워 남에게 주고 보면 집안은 온통 쓸쓸해지게 되니 아들을 하나라도 갖겠다는 생각도 너무한 욕심은 아니겠지. 그래서 옛날 같으면 딸만 낳았다 하면 천덕꾸러기요, 심하면 친정으로 쫓겨가는 일도 허다했단다.
그러나 요즘엔 『어지간한 아들보다는 딸이 훨씬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고 여성들의 사회진출도 현저해져 딸에 대한 인식도 옛날과는 많이 다르지. 시대가 그 만큼 달라졌다는 얘기가 아닐까.
너희들도 알다시피 그러나 아빠는 그런 시대적 흐름 때문에서가 아니라 늘 아름다운 감동에서 너희 딸들을 사랑한다. 너희들이 나에게 가장 가까이 있을 때는 꽃이 되고, 조금 물러나 있으면 딸이 되고 조금 더 물러서면 여성이 되고, 더 멀리 물리서면 우주의 어머니가 된다고 아빠는 생각하고 있다.
일본작가 「가와바따·야스나리」(천단강성)는 말을 찬미하여 말하기를 『시원스레 길러주는 너희들의 아름다움, 잠자는 딸은 불상을 닮은 것이 아닌가』고 했다. 나는 너희들을 볼 때마다 수정 같은 구슬을 향수에 넣어 향기롭고 따스해진 것을 손바닥에 올려놓은 것 같은 찬란한 느낌마저 든단다. 그래서 아빠는 너희들을 모델로 하여 아름다운 여인상을 그리곤 하지.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운 여인상이란 겉보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겉보기의 아름다움은 향기 없는 꽃과 같지 않을까.
정돈된 따사로운 인간애와 헝클어지지 않은 바탕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뤄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고 집안의 화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너희들이 엄마·아빠와 함께 살 때나, 그 곁을 떠나서 새 가정을 이룰 때나 마찬가지다. 표면의 아름다움보다 마음의 아름다움이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란다.
얼마 전 우리 나라에 왔다간 「테레사」수녀도 말했듯이 여성은 모든 행복의 기본을 가정에 두어야 한다. 특히 너희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아빠의 품안에서 사랑만. 받고 자라왔지만 너희들이 가정을 이루게 되면 사랑을 주어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게되는 것이다.
한 가정의 행복이 주부에 의해서 크게 좌우되는 것이라고 볼 때 너희들의 위치야말로 중요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그러나 아빠는 너희들이 슬기롭게 잘 해나갈 것으로 믿는다. 너희들로부터 『아빠는 날카롭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지만 아빠는 언제나 너희들의 얼굴만 봐도 슬픔을 즐거움으로, 화가 날 때는 웃음으로 풀어지는 마술 같은 비결을 느끼곤 했거든.
모든 것을 사랑하고 양보하며 인내하는 딸·아내·엄마가 되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여성이 되기를 아빠는 늘 바라고 있단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부족하고 부자유스런 일이 생긴다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지혜로 극복하면 행복은 늘 너희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이기고 싶어하는 욕망이나 남을 책망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늘 너희들에게 해로움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너희들과 삶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희생할 줄 아는 보배로운 여성이 되기를 아빠는 늘 기원하고 있다. 김형근(서양화가)

<딸이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엄마 잘못했어요" 그 한마디면 될 것을…|보이지 않는 「담」이 너무 많아요|서로를 이해하는 대화 자주 가졌으면
목련이 하얀 등같이 피어오르다 사라지고 모란이 타오르듯 피고 있습니다. 5월입니다. 매일 매일 바쁘게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5월은 이렇게 화려하게 손짓을 합니다.
꽃도 좀 보면서 살라고, 어린이도 생각하고 어버이생각도 한번 하면서 살라고 손짓을 합니다.
어머니, 제 방 책상 앞에는 제 어릴 적 사진이 한 장 놓여있어요. 세 살 먹은 아이가 돼지인형을 안고서 동그란 무릎을 다 드러내놓고 서 있어요. 아이의 옆에는 엄마가 서 있고요. 행복을 찍는 사진사가 찍어 놓은 것 같은 사진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감상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신문에는 매일 큰 글자로 슬픈 소식들만 그득합니다.
청소년들이 본드 냄새를 맡습니다. 싸움을 합니다. 칼을 휘두릅니다. 그들의 부모는 말합니다. 『내 아이가 그럴리가 없어. 우리 아이는 걸대로 그렇지 않아….』
소년들은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뒷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는 자식의 마음 한 쪽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담이 너무도 많은 것 같아요.
정부와 국민사이가, 상사와 부하사이가, 스승과 제자사이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사이가 높다란 담으로 가로막혀진 채 그냥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다른 세계에서 삽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모릅니다.
어머니!
지난 저의 1학년 시절은 갈등으로 가득 찬 한해였어요.
제복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20세. 학생들은 도서관에서보다는 다방에서, 경양식 집에서, 고고장에서 더욱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젊은이들은 낭만과 꿈과 사랑을 추구합니다. 긴긴 휴교는 더욱 더 학생들을 현실과 유리된 유혹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엄마, 거리로만 나가는 저를 붙들고 참 많이도 타이르셨지요.
그 때마다 저는 왜 이해해주지 못하느냐고 물었지요. 많은 갈등이 엄마와 저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어머니, 기억나시는지요. 지난 겨울, 이유도 확실히 기억나지 않던 그 슬픈 언쟁을요. 아마도 저의 늦은 귀가 탓이었나 봅니다. 엄마는 딸의 생활을 이해해오지 못했었고 딸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또 기억나시지요. 그날 밤, 서로 서로에게 싫은 소리들이 오간 다음, 마음을 있는 대로 상해 버린 뒤, 결국 제가 엄마 품으로 기어들면서 울어버렸지요.
『엄마, 잘못했어. 나 엄마 정말 사랑해.』
엄마는 그 한 마디로 저의 모든 무례와 방종을 또 한번 용서해 주셨습니다.
엄마!
저도 언젠가는 아이를 낳고 기성세대가 될 것입니다.
딸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걸려 또 모녀간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해도 난 모든 걸 용서해 주렵니다.
『엄마, 나 정말 사랑해.』 그 말을 들을 수 있다면요.
세상에 있는 수많은 「담」들은 사랑으로만 부서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머니와 심하게 다툰 후, 그리고 서로 실컷 운 후에 두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감동과 밝음으로 재생했습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다툼조차 담을 허물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인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정한 이야기라도 좋고 또 서로에게 약간씩의 상처를 입히며 다투는 것조차 우리들에게는 필요한 대화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일 테니까요.
5월입니다. 5월에는 많은 것을 믿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눈을 바로 뜨고 쳐다보는 세상,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세상, 마음놓고 웃으며 용서하는 세상. 어머니, 저는 그런 세상을 믿습니다.
빨간 카네이션이 많이 눈에 뜨입니다. 우리 모두 카네이션을 달고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제가 드릴 수 있는 선물은 이 카네이션과 「사랑」이라는 단어이고 싶습니다. 김소임(이대 2년·김세영 교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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