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경북 성주군 7개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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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초록빛 바탕에 싱그러운 호피무늬가 여름의 미각을 앞당기고있다.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달덩이 만한 수박을 가운데 놓고 『쩍』 소리가 나게 한 주먹에 갈라져 달고 시원한 과육으로 타는 목을 적시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여름 풍물의 하나.
수박하면 예나 지금이나 성주수박이 대명사. 단맛은 물론이고 잔설이 녹기도 전에 여름의 미각을 전해주어 일명 겨울수박으로도 불린다.
경북 성주군 벽진면·초전면·대가면·월항면 등 7개 면의 9백36가구가 경영하는 수박 비닐하우스는 2백58정보에 1천여 동에 이른다. 연간 생산량1만2천여t.
전국 속성재배생산량의 90%로 16억여 원어치. 출하 규모로도 전국제일이다.
성주수박은 9월에 파종해서 10월에 접목, 다음달에 정식하고 비닐하우스에서 수정을 거쳐 12월이면 수박열매가 달리기 시작된다. l월말이면 벌써 3kg크기의 수박덩이가 되어 것 출하, 한 겨올 식탁에 여름을 맛보인다.
벽진면 해평리 도재민씨(51)의 수박 비닐하우스. 바깥이 섭씨20도의 봄 날씨인데도 안은 섭씨40도의 찌는 더위다. 짙푸른 잎새들 사이로 3∼4kg 크기의 수박 1천여 개가 두줄 고랑에 즐겨 딩굴고 있다.
비닐하우스 5동(l천5백 평)에서 수박재배로 연간3백 여만 원의 순 수익을 올리는 도씨는 이 달부터 출하를 시작, 초복이면 반출을 끝내고 모내기를 한다.
『성주가 수박으로 유명해진 것은 타지방보다 집단재배가 앞섰고 재배기술개발에 꾸준한 노력을 했기 때문입니다』
맛과 생산량에서 전국제일의 수박단지가 된 것은 재배기술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성주에서 수박집단 재배가 시작된 것은 1940년대. 50년대엔 비닐하우스의 전신인 유지(유지)고깔로 계절을 앞 당겼고 60년대엔 대량생산으로 서울·부산·대구 등지의 청과시장을 휩쓸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재배되고있는 수박은 「신대화」 「기원」 「파이어니어」「미호2호」 등 외래품종과 「감로」·「홍감로」 등 국내 개량품종 등 15가지. 성주단지에서는 처음「신대화」를 많이 심었으나 과색이 허약하고 당도가 낮아 요즘은 당도가 높고 과색이 싱싱하며 씨가 작은 「미호2호」나「파이어니어」를 주로 재배하고 있다.
껍질이 얇아 수송 중에 깨어지기 쉬운 「미호 2호」는 근거리 출하농민이, 껍질이 두꺼워 잘 깨어지지 않아 수송하기 좋은 「파이어니어」는 원거리 출하농민이 주로 재배한다.
감로·홍감로 등 국내개량종은 과육이 연분홍으로 색감이 짙지 못하고 당도가 낮아 인기가 별로 없는 편.
수박은 수분이 92∼93%로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갈증해소엔 최고의 과일이다. 비타민A, B1, B2, C 등이 풍부하고 이뇨효과가 큰 「시트루린」이 들어있어 신장병 환자들에겐 안성마춤의 과일.
수박은 잘라 놓은 표면에 서리가 낀 듯 하얗게 비치는 것이 최상품. 성주 수박은 짙은 홍색 과육에 설탕을 뿌린 듯 서리가 끼고 한 덩이 떼어 물면 이가 시리게 찬 게 특징.
연작이 어려운 수박재배의 비결은 접붙이기. 파종해서 자란 묘본을 호박에 접붙여 연작에 따른 만활병을 예방한다.
따라서 우리가 한 여름에 즐기는 수박은 그 뿌리가 호박인 셈이다.
도씨는 성주수박만큼 이름난 무등산수박은 자라는 줄기를 잘라주지 않아 자연상태로 큰 일종의 야생수박이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도씨는 『지난해 11, 12월에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궂어 올해에는 재배면적을 절반으로 줄였다』면서 수박장사는 아이스크림 장사와 같아 가물수록 신이 난다고 한다. 20년 재배 경험에 따라「5동지·6섣달」을 그대로 믿는 것이 도씨의 날씨 측정 법.
수박 출하 최성기인 5월과 6월이 11, 12월과 날씨가 비슷하기 때문에 11, 12월에 눈이 많이 오면 5, 6월에 비가 많이 오는 등 날씨가 나빠 수박 값이 폭락한다는 게 도씨의 지론이다.
출하성수기가 되면 성주에서 3∼4km떨어진 이곳 해평리 일대 수박밭에는 하루 평균 3∼5대의 트럭이 들어와 달덩이 같이 싱싱한 수박을 무더기로 실어내 간다.
성주군일대 출하 최성기에는 하루 평균l백여 대의 수박트럭이 들락거린다.
해평리 70가구 중 수박재배 가구는 45가구로 이들의 가구 당 연평군 수임은 l백60여만원. 논농사의 갑절에 가깝다.
이들 농가는 수박판 돈으로 집집에 TV·냉장고 등 웬만한 전기제품은 물론, 교통수단으로 오토바이를 갖고있다.
시골답지 않은 높은 생활수준과 소비성향 때문에 『성주처녀에게 장가가려면 웬만한 밑천 없이는 안 된다』는 게 이곳 총각들 사이의 정설.
『5급 공무원 1년 봉급이 한철 수박 한물 값밖에 안되니 그런 농의 말이 나올 만도 하지요』
도씨는 아무리 살림 형편이 좋아져도 서리 버릇은 안 없어지는 모양이라며 간밤에 잘 익은 놈 세 덩이를 서리 당했다고 껄껄 웃는다.
수박동네 농민들이 다가올 수박 철을 맞아 일러주는 수박 고르는 법-.
『껍질에 솜털이 없고 매끄러워야 하지요. 호피 무늬는 검을수록 좋고 꼭지와 배꼽 있는 데가 조금 들어간 것이 잘 익은 겁니다』
『두드려보아 맑은 소리가 나면 상품이지요. 이것저것 어려우면 그저 「성주」표시 붙은 수박을 고르면 틀림없습니다.』 <성주=진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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