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축구스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차범근과 허정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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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레저문화의 급신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스포츠계에도 어느 덧 숱한 스타가 탄생했다. 아직은 그들의 명성이 잘해야 동양 권을 벗어나기가 힘든 형편이어서 섣불리 「세계적」이란수식어를 붙이기가 쑥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70년대말부터 몇명의 스타가 시도한 탈 동양 권의 몸부림은 우리나라 스포츠계에 적잖은 파문과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넘어야할 고개 많아>
그 대표적인 예가 서독 「분데스·리가」의 「아인트라하트· 프랑크푸르트」팀의 차범근과 「네덜란드」 l부 축구리그 「아인트· 호벤· 필립스」SV팀에서 뛰고있는 허정무 선수-.
두 사람 다 70년대 한국축구의 주축을 이룬 스타였고 또 현재의 활동무대도 「세계적」 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의 프로축구계다.
그들이 과언 일부 국내여론의 「착각」처럼 유럽축구 계를 뒤흔드는 위치에 서있느냐는 것은 의문이지만 최소한 국내에서 누렸던 스타플레이어의 명예가 손상을 입지 않을 만큼의 대접은 받고있다.
서양의 프로스포츠에서 스타가 되려면 △탁월한 기술 △상품으로서의 가치 △인간으로서의 인기 △강한 운 △매스컴의지지 △끈질긴 승부 욕을 두루 갖추어야된다. 이중 한 두가지 요소가 빠지면 일정수준 급의 선수는 될지언정 스타가 되기는 힘들다.
엄격히 말해 차·허 선수가 유럽축구 계에서 스타로 부상하자면 넘어야할 고개가 아직도 많다.
차·허 선수 본인들도 물론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돈 잘 벌고 화려한 생활을 즐기기보다는 뼈를 깎는 정진의 길을 걷고있다.
차 선수는 「프랑크푸르트」교외의 고급주택가 「리티그코프」에서 부인(오은미), 아들·딸과 살고 있다. 값나가는 가구, 벤츠280SE 승용차, 연봉40만 마르크(1억3천2백만원) 등등이 그의 재산목록이다.
얼핏 유복한 생활에 걱정이 없어 보인다. 차 선수 자신도 한국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이 재산목록에서부터 자랑을 풀어가고 또 많은 사람이 여기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다.
차 선수는 언제나 「돈과 조국의 명예」를 자신의 모든 것과 결부시켜 설명한다. 차 선수의 말을 빌면 그는 「분데스·리가」(18개 팀) 선수3백78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정액 소득자이며 「베켄바워」 「칼츠」 「투메니케」 「브라이트너」와 버금가는 대 「스타」다.
또 79년에 입단하자마자 잇달아 터뜨린 골 덕분에 매스컴의 각광을 받았던 일, 너무 잘한 너머지 질시의 대상이 되어 부상을 입었던 일, 팀과 감독의 사랑을 각별히 받고 있는 점 등, 이 모든 것을 그는 『주님의 가호』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족나들이 단 한번>
그러나 조금 더 파고들면 그에게도 고민이 많다. 우선 금년들어 골이 터지지 않고 있다. 그는 팀에서 받는 돈만큼 골이 나지 않아 초조해 하고 있다. 또 날이 갈수록 깊어만가는 인종·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벽을 절감하고있다.
말이 안 통해 팀에 가면 외톨이를 면할 수 없고 각종 공과금 청구서를 재대로 처리하지 못해 집의 수도·전기가 끊기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서독 온지 2년이 가까워 오지만 가족나들이라고는 동물원에 한번 가본 것 밖에 없다. 교포 사회에 어울리려고 하지만 『건방지다』 『오만하다』는 소리가 간혹 들리고 생활의 리듬을 깰까봐 접촉을 피한다. 교포 중에는 차를 키우기보다는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차 선수는 확실히 운이 좋았고 기량도 보통 이상으로 평가받는데 성공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부인의 내조를 받아 생활도 건실한 편이다.
허정무 선수는 명성·운에서 차 선수보다는 다소 처진다.
차 선수가 입단해서 바로 레귤러로 뛴데 비해 허 선수는 한참 후에 레귤러에 들어갔다.
『처음 와서 5게임은 벤치에서 지켜봤지요. 그 이후에는 90분 게임 중16∼20분 뛰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날 감독이 게임종반에 출전준비를 명령했는데 그라운드 주의를 돌면서 몸을 풀다보니 게임이 끝나버리더군요. 어찌나 창피한지…』
허 선수는 초기의 참담했던 시절을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나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 작년 후반기에는 매주 뽑는 「베스트11」에 두번이나 끼는데 성공했다.
연봉도37만 길더(1억l천만원)로 차범근과 큰 차이가 없다. 집·자동차등 외형적 살림살이도 따스하고 윤택한 것처럼 보였다.

<박상인은 정착 못해>
항상 축축히 젖어있는 잔디구장에서 뛰느라 체력이 달려 고생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부인 최미나씨의 뒷바라지로 몸도 국내에서 보다 좋아졌다.
다만 그가 살고있는 「아인트·호벤」시에는 타국사람들이 없어 한국식품을 구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고 있다. 부인 최씨는 모든 밀 반찬을 서울에서 부쳐온다고 말했다.
차·허 두 선수는 프로선수생활의 상한선을 32세로 잡고 있다. 차 선수는 『체력관리만 잘하면 32세까지 뛸 수 있을 것 같다』며 그 때까지 한 3억원 정도 모아 귀국 후 그의 평생 꿈인 청소년축구학교를 세우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허 선수 역시. 『외국이란 거쳐가는 곳이지 살 곳은 못된다』며 2년 단위인 계약이 내년6월 끝나면 한차례만 더 경신하고 은퇴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에는 코칭스쿨에서 공부를 계속해 축구지도자로서 모국의 축구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유럽」은 어느 나라든 프로축구 팀에 외국인 선수를 두명 밖에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박상인 선수는 「로테르담」「페이놀드」팀에 테스트까지 받았으나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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