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젖줄 천삼백리…낙동강의 기원|삼척군 황지읍 황지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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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한 가닥이 일어나 만 가닥으로 퍼지는 것이 산이요, 만 굽이가 휘돌아 한줄기가 되는 것이 물이다.
산골마다 흐르는 억만 줄기 물은 아래로 아래로 달리며 한반도 남쪽 땅에 다섯 개의 큰 강을 이루어 바다로 들어가니 낙동강이 맏형이요, 그 아래 한강·금강·섬진강·영산강을 두고 있다.
푸른 띠를 늘여놓아 5백25·75km, 남한면적의 24.2%인 2만3천8백평방km의 땅에 젖줄이 되는 낙동강은 거슬러 거슬러 강원도 태백산 꼬리에서 장정의 첫 발을 내딛고 있다.
강원도 삼척군 황지읍 황지6리 483 「황지못」-. 이 곳이 바로 최장강 낙동의 발원지다.
검은흙 검은 먼지, 국민학교 어린이가 「검은 냇물」을 그리는 탄광마을에 단 한곳 「황지못」만이 아청의 물줄기를 갖고 있다.
길이 55m, 폭30m, 깊이 5.9m, 표주박 모양의 이 못은 7년 계속되는 가뭄에도 마르는 일이 없고 한달 장마가 계속돼도 넘치는 법이 없다.
『영특한 산이 있으면 영걸스런 사나이를 낳고 맑은 물이 감돌 때 아리따운 여자가 태어난다.』 월탄은 그의 초기작품 『전야』에서 산과 물의 있음이 단순하지가 않음을 지적했다.
천고의 만고풍상을 싣고 천리 길을 달리는 대강의 발원지고 보면 이 또한 범속할 리가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해마다 봄이면 황지못물 빛이 변했어. 붉은 색이 되면 흉년이 들고 뿌연 잿빛이 되면 풍년을 예고했지.』
낙동강의 꼭지 물로 70을 넘어 산다는 남씨 할머니(75)는 황지못이 영지라고 힘준다.
남 할머니의 영험 있는 못 이야기 말고도 이 곳 마을의 나이든 노인네들은 못에 얽힌 전설을 마을자랑처럼 들려준다.
황지읍 한복판에서 솟고있는 황지못은 원래가 집터였단다. 때는 신라 선덕여왕 16년(6백47년) 황익이라는 소문난 구두쇠 갑부가 큰집을 짓고 이곳에 살았다.
하루는 황부자가 외양간을 고치고 있는데 중이 찾아와 불경을 외며 시주를 구했다. 구두쇠 황부자는 쌀 대신 외양간 쇠거름을 한 삽 떠 중의 배랑에 넣어주었다.
스님이 쇠거름을 얻어 말없이 떠나려는 순간 황부자의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배랑을 깨끗이 씻고 쌀 한말을 넣어주었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얼른 집을 떠나시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라며 자취를 감췄다.
무조건 집을 나선 며느리가 한 10리쯤 갔을 때 자기 집 쪽에서 뇌성벽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는 순간 집은 간데 없고 한줄기 물기둥이 치솟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본 며느리는 돌미륵이 되었고 황씨의 성과 연못이 된 집터를 따서 황지가 되었단다.
『남에게 악하게 하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교훈이지.』 이 전설 때문에 거칠고 다툼 많은 광산촌답지 않게 주민들 마음쓰는 게 하나같이 착하다고 김동일 노인(66)은 말한다.
30년 전만 해도 못 주위는 숲에 둘러싸여 산오리가 날아왔고 물동이 이고 물 길러 오는 처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농촌이었다.
지난 57년부터 태백산을 중심으로 석탄개발이 시작되면서 인구 4천∼5천의 황지는 20여년 사이 6만5천의 광산촌으로 변했고 오는 7월이면 시로 승격이 된다.
황지못의 전실을 들으며 살아온 원주민은 7백여 가구에 4천5백여명. 읍민 중에 땅을 갈며 사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 토박이 뿐이고 나머지는 타지에서 석탄 찾아 들어온 광부와 상인들이다.
토박이들의 가구당 소득은 2백20만원으로 넉넉지 못한 생활들을 하지만 낙동강 꼭지머리에 사는 자부심만은 대단하다.
『춘하추동 사철 먹어봐도 꿀맛인 샘물에다 물빛을 새까맣게 그리는 자식 없는 게 강원도 산골에선 큰복이야.』 김노인은 황지못 물길을 「콱 막아 놓으면 남한 반쪽이 갈증 때문에 못 배길 것이라며 걸걸 웃는다.
못은 지금은 읍 전체의 식수로 하루 2천5백t을 생산하는 상수도원. 한겨울이면 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게 따뜻해 손님이 오면 데우지 않고 그대로 대접에 떠올려도 되고 여름이면 이가 시리게 차가와 얼음이 필요 없다. 『신문에 나면 손해여. 별맛 좋아하는 도회지 사람들 물맛 본다고 몰려오면 자연 물이 더럽혀지지.』 남씨 할머니는 연전 어느 대학교 학생들이 떼로 몰려와 못 주변에서 밥해먹고 빨래하는 통에 호통을 쳤다며 그 뒤 주민들이 돈을 모아 지금의 철책(높이 1.5m)을 쳐 놓았다고 한다.
황지못 주민들은 시 승격을 앞두고 한층 걱정이다. 주민 김태석씨(47)는 『상수도원으로서 물의 과용을 막기 위해 다른 수원지개발이 필요하고 7월 태백시승격에 따른 도시화로 자칫 공해에 오염되지 않도록 보호대책을 세워야한다』고 말한다.
황지못 주민들은 몇 백년 몇 천년을 두고 푸른빛 도는 맑은 물을 낙동강에 흘려 보내고 싶은 것이다. <황지=정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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