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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가 권선의 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궁류청청앵난비 만성관개미춘휘 조정공하승평악수유 위언출포의>
(궁중 버들 푸르고 꾀꼬리 어지러이 나는데/ 장안 가득한 벼슬아치들 봄볕에 아첨하네/ 온 조정 모두 태평성대를 노래하는데/ 누가 바른말을 선비에게서 나오게 했나)
이 시는 광해군(l575∼164l년)때의 문장가 권선이 한참 득세하고 있는 유희분을 조롱한 시다.
유희분은 광해군의 처남으로 정권을 쥐고 조정을 어지럽히다가 인조반정 때 참형을 당한 인물이다. 여기에서 버들은 유씨들을 지칭한 것이고 바른말을 한 선비란 당시 유희분의 무도함을 대책문으로 공박한 임숙영을 가리킨다.
권선이 하루는 친척집에 가 술이 잔뜩 취해 있는데 마침 유희분이 그 집에 왔다. 주인이 발로 차 깨우자 눈을 뜬 그는 한참 유희분을 노려보더니 『네가 유회분이냐? 네놈이 부귀를 누리기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다. 나라가 망하면 네놈의 집도 망할 것이다』라고 호통을 쳤다.
그 후 이 시가 유행되자 유희분은 광해군에게 권필을 죽여야한다고 부추겼다. 드디어 조수윤의 집에서 시의 원본이 발견되어 권필은 친국을 받은 후 귀양을 가다가 동대문 밖에서 사람들이 주는 술을 폭음하고 죽었다.
그가 죽자 사람들이 주인집 사립문짝을 떼어 척상을 삼았는데 그 문위에 이런 시가 있었다.(지봉유설)

<정시청춘일장모 도화난락여홍우 권군종일명정취 부도류령분상토>
(때는 봄, 해지려하는데/ 복사꽃 어지러이 붉은 비 뿌리네/권군은 종일 술에 취해/유영의 묘에 이르지 못하네) <조수익(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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