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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면 자궁경부암 위험 커져 … 20대 직장여성 주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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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박모(28·여)씨는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자궁경부암 원인 바이러스(HPV)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HPV는 130여 가지며 이 중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고위험군은 13개다. 박씨는 13개 중 하나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병원에선 “바이러스가 있어도 암에 걸리는 경우는 극히 일부라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면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잘 받으라”고 권했다. 직장생활 5년차인 박씨는 주로 술로 스트레스를 푼다. 그는 “검사 결과를 듣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술이 더 늘었다”고 했다. 박씨는 병원 말대로 안심해도 될지 걱정을 떨치지 못한다.

 박씨가 이른 시일 내에 암에 걸릴 가능성은 낮다. 한국 여성 중 34%가 HPV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HPV에 감염돼도 대부분은 1~2년 뒤 사라진다. 전체 감염자의 10~15%만 바이러스가 남는다. 이 중에서 다시 10%가 암의 직전 단계로 발전하고, 그중에서 다시 극히 일부(2~5%)가 자궁경부암에 걸린다.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술은 줄이거나 끊는 게 좋다. 술이 암의 가능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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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소주 두 잔(알코올 15g) 이상을 마시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HPV가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감염될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6일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암역학관리과 김미경 박사팀은 2002~2011년 암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여성 1만1140명 중 고위험군 HPV에 감염된 922명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음주량이 HPV 지속감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상관관계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박사팀은 고위험군 여성을 음주량에 따라 2년간 조사했다. 그랬더니 음주량이 매일 15g(소주 두 잔 또는 맥주 한 캔) 이상인 여성이 1년 뒤 여전히 감염 상태로 남을 위험성은 술을 아예 입에 대지 않거나 하루 소주 두 잔 미만을 마시는 여성에 비해 2.05배 높았다. 2년 뒤엔 3.34배로 위험도가 크게 높아졌다. 음주 기간이 긴 경우는 더 위험했다. 5년 이상 음주 습관이 있는 고위험군 여성은 1년 뒤 3.07배, 2년 후엔 5.72배까지 위험도가 껑충 뛰었다. 물론 이 위험도가 높아진다고 자궁경부암이 비례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인 바이러스를 몸에 달고 있다는 것은 자궁암 발생 환경에 노출된다는 의미다. 김미경 박사는 “술이 HPV 감염을 지속시켜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술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활성산소를 없애 HPV 감염에 대한 방어 능력을 떨어뜨린다”며 “사회생활이 왕성한 20대 직장여성 중 고위험군은 술을 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면서 자연스레 회식·음주문화에 노출이 된다. 소주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20도 이하로 낮은 제품을 출시해 여성 음주가 대거 늘어난 것도 요인으로 지적된다.

 HPV는 성관계를 통해 감염된다. 김 박사는 “음주 자체가 성관계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겠지만 이런 부분은 연구를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우리나라는 성문화가 개방적인 선진국에 비해서도 여성의 HPV 감염률이 눈에 띄게 높다”면서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유흥업소 출입이 잦은 일부 남성을 통한 간접 감염도 한국 여성의 감염이 유달리 높은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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