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싱크홀보다 무서운 '집값 싱크홀' 걱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지난 5일 석촌지하차도 앞 싱크홀. 두 달새 여섯 번째다. 주민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집값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 페이스북 유저 김성진씨]

동상이몽(同床異夢).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 인근 잠실 아파트 단지에서는 요즘 집주인과 세 들어 사는 사람이 똑같은 싱크홀을 놓고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쪽은 집 값 떨어질까 쉬쉬하지만, 다른 한쪽은 기왕 이렇게 된 거 집값이나 좀 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지난 21일 방이동 방이사거리 인도에서 싱크홀이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잠실 인근에서는 최근 두 달 새 싱크홀이 여섯 번이나 발생했다. 가뜩이나 석촌호수 수위가 갑자기 낮아진 게 인근 제2롯데월드의 국내 최고층 타워(123층 555m) 공사 때문이 아니냐며 불안해하던 차에 도로가 잇따라 꺼지니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중 석촌지하차도 싱크홀은 지하철 9호선 터널공사가 원인인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원인을 파악했다지만 불안감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만 커지고 있다.

자녀 교육 때문에 당분간은 잠실을 떠날 수 없다는 주부 박모(45·잠실2동)씨는 “주위에서 싱크홀 문제를 얘기하며 ‘이사가야 하지 않느냐’고 얘기하면 착잡하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39·송파동)씨도 “올 초 비싼 값에 전세계약을 했는데 주위에서 ‘집값 떨어진다’는 소문이 파다해 기분이 언짢다”고 했다.

특히 잠실 집주인들은 내심 불안해하면서도 집값 떨어질까 무서워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하는 눈치다. 한 중소 IT회사 대표 김모(37·잠실 리센츠아파트)씨는 “안 그래도 불경기로 아파트값이 수억원 떨어진 마당에 싱크홀 문제가 불거지면 누가 잠실 아파트를 사겠느냐”며 “재건축 전부터 살던 원주민이라면 모를까 투자 목적으로 대출 끼고 집 산 사람은 지금 다 곤혹스러워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실 원주민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35년째 잠실에 산다는 김정순(61·잠실 주공5단지)씨도 “싱크홀이란 건 지금까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며 “안전문제도 물론 우려스럽기는 하지만 집값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세입자들 사이에선 “잘됐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모(51·잠실 엘스)씨는 “설령 원인이 밝혀져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도 향후 1~2년간은 싱크홀에 대한 우려가 씻기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전세값도 떨어질테니 재계약을 앞둔 입장이라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인이 전세값을 올려받기는커녕 세입자가 오히려 가격을 깎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이다. 내년 초 재계약을 앞둔 주부 이모(45·잠실6동 장미아파트)씨도 “집에 대한 애착은 집주인과 세입자가 당연히 다르다”며 “일부에서는 제2롯데월드가 집값 상승 요인이 아니냐고도 하는데 아직까지는 상승 요인보다는 하락 요인이 더 큰 것 같다”고 했다. 김모(37)씨는 “반상회에서 한 세입자가 ‘아파트까지는 아니어도 빌라 한두 채만 무너지면 집값이 대폭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하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잠실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제2롯데월드 개장 후 오히려 잠실은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져 있다”며 “싱크홀은 사고가 발생한 지역(석촌동·방이동) 인근에 한정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싱크홀이 잠실 집값에 끼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함영진 부동산114 시장리서치센터장은 “싱크홀로 인한 불안감 탓에 부동산 가격이 떨어졌다는 신호는 현재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며 “주공5단지 재건축과 제2롯데월드 건립에 따른 조망권 침해 등이 싱크홀보다 더 큰 변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만약 투자 매력이 떨어져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전세값까지 꼭 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덧붙였다. 잠실은 자녀교육 등으로 늘 수요가 있어 집값 하락과 무관하게 집주인이 전세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세입자가 꼭 유리하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도 “잠실 일대는 제2롯데월드 개발에 대한 기대감과 싱크홀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한다”며 “싱크홀이 지금보다 더 반복적으로 나타나야 집값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잠실을 비롯한 송파구의 아파트 매매와 전세 시세엔 아직까지 별다른 변동이 없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송파구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해 8월 1m²당 630만원에서 올 2월 650만원으로 조금 상승한 후 8월 25일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전세가도 마찬가지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